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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도(古都) 경주에 가서 까마귀를 만나다

by 박재옥


고도(古都) 경주에, 까마귀가 많은 데 놀란다


이건, 난데없이, 어디서, 출몰한 전염의 포자들인가, 일상에 지친 심신을 치유 받으려고 고도에 찾아왔는데


이런 종류의, 몰염치한, 선입견과 반어를 본 적이 있었나, 마음은 희지만 몸은 검은, 영혼은 희지만 울음은 검은,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저, 통렬한 자기모순을


알 수도 없지만, 알고 싶지도 않은, 괴리의 새, 검은 은유와 상징의 덩어리들, 이승의 새가 아닌 것도 같고, 그렇다고 저승의 새도 아닌 것 같은


불길하거나 불길하지 않거나. 이다


태종무열왕릉 부근에서 출몰한 일군(一群)은 나라에 큰 초상이 나서 조복 입고 모여든 문상객들 같아서, 불길하거나

오릉 소나무 숲에서 날아오른 군무는 지상의 영혼을 천국의 계단으로 배송 중인 집배원들 같아서. 불길하지 않거나

한순간 덮쳐온 검은 바람이 재앙처럼 황룡사 빈터를 휩쓸고 지나가서, 불길하거나

첨성대 뒤편에서 회오리치는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오래 묵은 체증이 일거에 내려가서, 불길하지 않거나


경주에 까마귀 군단이라니, 고도를 명부(冥府)의 휴게소쯤으로 여기는 건지, 역사의 뒤편에서 파견된 선글라스 쓴 감시자들인지, 눈 마주쳐도 행간을, 전혀, 읽을 수가 없는, 무표정의, 암울의, 까만, 마귀인,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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