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서민 아파트에서 꾹꾹 눌러 살다가
이삿짐 쌀 때서야 드러나는
뽀얀 먼지의 속살들
그는 우리집 집안 내력을 꿰차고 있었다
책상 밑에서 기어 나온 그의 목젖에는
내가 아이들에게 동화책 읽어주던 음성이 들어 있었고,
주방 싱크대 밑에서 끌려나온 손아귀에는
아내의 저녁 칼질하던 소리가 꼭 쥐어져 있었다
심지어 묵은 밥풀이 부장품처럼 돌돌 말려나오기도 했다
내공 깊은 그는 무심의 은둔자가 아니었다
그가 우리 가족과 나누어 가졌던 섬세한 감정의 결들
조목조목 사색의 기록물까지 남겨두었으므로
과묵하지만 깊은 사색가로 대접 받아 마땅하다
그런 공과를 헤아리지 못하고
집안공기가 탁해질 때마다
결정적 주범으로 지목했던 일이라니
살가웠던 시간의 마디마다
살과 뼈는 없고 날개가 승한 것들이 붐볐다
우리도 먼지에서 와서 다시 먼지로 돌아간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사는 둔탁한 생활의 모서리
가벼움조차 포용하고 살지 못했던 나날들
내가 아이들과 소파 위에서 스파이더맨처럼 뛰어다니며 놀 때
그는 배를 쥐고 키득거렸을 테고,
부부싸움 할 때는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사랑을 나눌 때는 덩달아 뜨거워졌을 것이다
그의 웃음과 눈물의 한 올 한 올이 도약했다가
내려앉으며 둘둘 엮었을 사연의 뭉치들
난 너희 가족의 일을 다 알고 있어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포즈가 놀랍다
그런 그를 진공청소기로 확 빨아드린다
아쉽고 미안하다, 먼지여
내 집의 오래된 동거인이여
배후에서 가부좌 튼 은자라고 말하고 싶은,
결코 가볍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