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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부고(訃告)

by 박재옥

벌들이 상복으로 갈아입는다

침통함이 개꿀처럼 흐르는 벌통에서

밀랍으로 머리에 흰 띠를 두른 벌들이 기어나온다

노인의 부고가 날아든 뜻밖의 오후

봉장에는 급하게 상가(喪家)가 차려졌다

슬픔의 완장을 차고

눈물의 꽃가루를 입에 물고 온 벌들이

소리 없는 통곡을 날갯소리로 내지르며

난기류로 배회하고 있다

가을의 계엄령이 삼엄한 윗말 처소

봉두난발한 마음의 자식들이 모여들고 있다

담장 위에 도열한 어린 상주들은

묵언의 경을 읊조리며

밤 세워 아비의 혼을 지키고 있다

곡진한 마음이 벌들의 이마를 보듬으며

마음의 끈으로 이어져오는

미더움이 선명한 자리

아비의 손길로 끈적거리지 않는 곳이 없구나

동이 터오자 어린 상주들이 날아올라

노인의 혼을 하늘로 운구하고 있다

사랑이 아득해지는 지점까지


※ 벌 치는 사람이 죽으면 벌들은 그걸 알고서 상주가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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