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행위에 대하여
앞서 다른 글에서 언급하였다시피,
나는 구토 행위를 굉장히 무서워한다.
https://brunch.co.kr/@8d234bec409f499/35
이 글을 꽤 잘 적었으니 다들 읽어주면 좋겠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또 구토를 했다.
급하게 먹은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너무 힘들어서, 스트레스 받아서
체하고 토해낸 거 같다.
나는 소화제로 해결 못하는 구토에 대해서 굉장히 겁을 먹는다.
그래서 "소화제로 해결 안 될 거 같은 구토"라는 판단이 들면
바로 토하러 간다.
그것이 아무리 힘든 행동이라도, 나를 위해서.
그런데, 어제 구토를 했던 일에 대해서
오늘 깨달은 점이 있었다.
괴로운 행동을 하는 것은, 힘든만큼 용기 있는 거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는
괴로워하는 것을 택하는 것이 오히려 더 쉽구나.
차라리 괴롭고, 아픈.
나를 해치는 행위를 하는 것이 더 쉬울 때가 있겠구나.
무슨 이야기냐고?
오늘 내 이야기를 들으면 이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어제 구토를 하고, 오늘은 빈 속으로 학교에 갔다.
학교 후문에는 맛있는 중식집이 있는데,
어제 구토를 한 이후부터 짜장면이 너무나 먹고 싶었다.
구토한 이후에는 가벼운 음식을 먹어야 되지만,
괜찮겠지 생각하며 짜장을 먹었다.
짜장을 먹은 직후에는 괜찮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구역감이 올라왔다.
그 순간 깨달았다.
"학교에서는 토 하면 안 되는데. 이거 약으로 될까?"
하지만,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토를 하지 않기로 결정해둔 상황.
그렇다면 나에게는 미리 받아둔
소화제밖에 없었다.
베나치오를 마시면서
속으로 빌었다.
괜찮아지게 해주세요.
토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게 해주세요.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베나치오를 마시고 소화제 알약까지 먹으니
속이 많이 나아졌다.
굳이 변기를 붙잡고 구토를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토를 하지 않기 위해
나는 많은 불안과 걱정에 시달렸다.
차라리 구토를 하는 것이 나을만큼.
차라리 체면을 내려놓고 구토를 하는 것이 편할만큼.
하지만 그것을 참아냈다.
나를 위해서.
그러니까,
나를 살리기 위해서 하는
"구토"라는 행위가
양면적인 칼날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하는 걸 싫어해도,
나를 위해서 싫어하는 것을 택하는 것도
나를 위한 것이고.
나를 위해서, 토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견디는 일도
결국 나를 위한 일이다.
결국은 어느 정도의 '선'까지가
나를 해치는 것일지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하는 행위가,
어느정도까지여야 "나를 살리는 것"인지를 알아야,
진정한 나를 위한 행위가 된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은 날이었다.
구토를 하고 싶던 선택.
어쩌면 더 쉬운 선택을 하려고 했던 나를 막았다.
그리고 이것도 나를 위한 일이라는 걸.
구토에 대해서는 '적당한 선'을 찾기가 어렵다.
나에게는 구토겠지만,
당신에게는 어떤 것이, 두려움, 회복
양면성의 행동을 가진 것인지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양면성을 잘 살펴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