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의 달콤함으로 손이 더러워져도 말이야.
한 입 베어문 수박에서는
과즙 속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이 느껴졌다.
부주의로 인해 손바닥에 흘러내린 과즙이 있더라도.
번거로운 수박씨가 있더라도.
짧게 뱉고, 와그작 씹고, 삼킨다.
달콤함을 마주하며,
그렇게 손에 흘린 과즙을 닦아낸다.
수박껍질만 남아있는 그릇을 가만히 보며,
오늘도 다시 수박을 동경한다.
엄마, 나 수박 내일 또 먹을래.
손바닥에 묻은 과즙을 여러 번 닦아내다가,
결국 손을 씻으러 간다.
놓을 수 없는 과즙.
다시 품는 동경.
여름의 계절이 왔다.
덥고 습해서 남들이 모두 인상을 찡그리는 날씨이지만,
일명 "여름 덕후"인 나는 이 여름의 날씨만을 동경해 왔다.
때로는 살이 아플 정도로 따가운 햇빛도 좋고, 그 햇빛에 살랑이는 나뭇잎도 좋다.
햇빛이 비쳐서 밝게 보이는 도시도 좋고, 자연광으로 감싸지는 숲도 좋아한다.
남들은 더운 날씨라서 땀이 나서 여름을 싫어하지만,
나는 습하고 더운 날씨여도 여름이 품을 수 있는 분위기가 좋다.
햇빛이 날 비추면서 빛이 날 때, 마냥 내가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만 같아서.
마치 광합성을 하는 식물 같이 말이다.
그리고,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과일도 있지 않은가!
바로 수박이다.
여름에 가장 떠오르는 이미지를 고르라면 뭐가 있을까?
햇빛이 비추는 바닷가, 햇빛과 함께 살랑이는 나뭇잎과 그 계속,
그리고 그 계속에서 먹는 백숙과 수박.
응, 수박!
나는 수박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그런데 가장 큰 단점은 세월이 흐를수록 너무 비싸진다는 점이다.
내가 어렸을 때인 2010년대는 수박이 그리 비싸지 않아서, 마트에 가면 자주 샀던 기억이 있다.
매번 엄마와 마트를 가면 십중팔구 수박을 사 왔으니까.
통통, 두드려도 보고 매끈한 수박껍질을 만져보기도 하면서
엄마에게 수박을 사달라고 많이 졸랐다.
그래서 마트를 가면 그렇게 자주 수박을 사 왔었다.
그런데 요즘은 물가가 올라서 그런가, 수박을 사는 게 쉽지가 않다.
무려 2만 원 가까이 되는 가격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여름만의 특권이 아닌가. 매번 비싼 가격에 고개가 저어져도 사고 싶어진다.
그렇게 수박을 사오면 나는 엄마 옆에 졸졸 붙어서 수박을 구경했다.
수박을 가르는 순간, 씨앗의 개수가 나의 번거로움을 결정한다.
어떤 수박은 씨가 한가득,
어떤 수박은 씨앗이 거의 없다.
씨앗이 맛의 품질을 정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씨앗이 수박의 번거로움을 차지한다는 건 알겠다.
그래서 생과일 주스도 너무 비싼 거고.
하여튼, 그래서 그 수박을 한 조각씩 잘라서
에어컨 있는 방에 들어가
재미있는 영상을 틀어놓고 먹는다면 어떤 것도 부럽지 않다.
어린 시절에는 티비 앞에 앉아서 짱구나 스펀지밥, 티미의 수호천사 같은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문득 수박을 먹다 보면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르기도 한다.
수박을 먹을 때는, 어릴 때는 수박 씨앗을 계속 발라서 먹었지만, 요즘은 입에 생기면 바로 뱉어낸다.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 먹지만, 그 번거로움을 최대한 줄여가면서 먹는 거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박을 조심해서 먹으려고 해도, 결국 손에는 과즙이 왕창 묻기도 한다.
그럴 때면 휴지로 닦아보다가, 손을 씻고 온다.
수박은 그 달콤함만큼 번거로움도 참 많다.
그래서, 그렇게 맛이 있는 걸까.
수박껍질만 남아 있는 접시를 보던 어느 날,
문득 "또 먹고 싶다. 또." 이렇게 생각한 날이 있었다.
그렇게 번거로웠는데.
뭐가 그렇게 좋아서 수박을 또 먹고 싶었을까.
수박을 먹기 전에는 번거로워서 미루고 싶다가도,
결국 맛보는 순간에는
그 달콤함에 빠지게 되고,
번거로워도 또 찾게 된다.
그게 달콤함의 매력이겠지.
가끔은 나도 수박 같은 무언가를 갖고 있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나 달콤해서, 결국 놓지 못할 만큼 소중한 존재였으면 좋겠다.
뭐, 그래서 내가 수박을 동경하는지는 모르겠다.
번거로움을 간직하고 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그런 존재가,
너무나 좋아 보여서.
그게 부러워서.
그렇게 동경하고 있는 것일지도.
때로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무언가를 챙기게 된다.
비효율적으로 말이다.
그건, 그게 너무나 달콤해서겠지.
그게 무엇이든.
비효율적이지만 달콤해서 가치 있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효율적이지 않지만 달콤해서 가치 있고, 그래서 소중한 것들이 있다.
그런 소중한 것들을 동경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으니까.
그저, 나도 달콤한 무언가를 성취하고 간직하고 싶은 거다.
그게 어떤 것이든.
수박 껍질을 차곡차곡 쌓아본다.
빨간색이 전혀 없는 그릇들.
손에 남아 있는 과즙.
번거로움의 증거 씨앗들.
음, 그래도.
나는 이따 또 수박 먹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