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엄마의 사랑은 질리는 사랑.
엄마는, 내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이 있다면
내가 먹고 싶다는 음식을 어떻게든 많이 주려고 했다. 줄 수 있다면 말이다.
김치찌개든, 요거트든,
아이스크림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유통기한이 지나더라도,
우선은 많이, 실컷 먹으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질리도록 주는 것이 사랑이라면...
엄마의 김치찌개는 밖에서 먹는거와 다른 그러한 투박한 맛이 느껴진다.
일명 '손맛'이라고 해야 될까. 조미료가 첨가 되지 않은 맛, 그 맛으로 끓인 진한 멸치 육수.
일정한 시간이 되면, 마치 알람시계가 울리는 것처럼,
나는 엄마에게 "고기 넣고 김치찌개 해줘!" 라고 얘기하고는 했다.
그러면 엄마는 바로 삼겹살 혹은 오겹살을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주셨다.
집에 오면, 큰 냄비에 한솥 끓여진 김치찌개가
눈에 띈다.
빼꼼하게 보이는 비계 있는 고기, 그리고 빠알간 김치가 너무나 먹음직스럽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김치찌개를 원할 때면
무언가 많이 지쳐있을 때였다.
학업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학업에 굉장히 지친 날. 엄마한테 전화로,
"엄마, 나 오늘 김치찌개 먹고 싶다."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 묘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인지, 그럴 때마다 먹은
적당히 매운 김치찌개는 나만의 해장국이었다.
비계와 어우러지는 김치찌개는 환상의 조합.
술을 먹지 않았지만,
나만의 답답함을 잠시나마 내려주게 하는 김치찌개.
나는 김치찌개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밥을 먹는다.
우선은 흰 밥을 한 공기 가득 뜬다.
그리고 숟가락에 한가득 밥을 뜨고,
위에 김치를 올린다.
그 상태로 와앙!
그리고 한 입 가득 입에 넣고 씹어먹는다.
비계 있는 고기는 덤으로 같이 입에 넣어준다.
와앙, 하면서 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
입 안에서 김치의 새콤함과
고기의 느끼함이 어우러진다.
그리고 다 먹은 다음날, 반찬을 새롭게 찾으면
여전히 한 솥 가득 끓여진 김치찌개가 눈에 보이고는 하였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는.
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질리도록 해주었다.
그건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하면 김밥을 질리도록 만들어주셨다. 거의 일주일가까이 말이다.
어떤 특정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하면, 그 아이스크림만 5개 넘게 사다주기도 하셨다.
요거트가 먹고 싶다고 하면, 요거트를 한가득 사오시기도 하였다.
빵도 마찬가지.
이렇게 너무 많이 질리도록 사놔서,
가끔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리게 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엄마가 날 얼마나 챙기려고 했는지.
그만큼의 큰 부피의 사랑이 느껴진다.
문득, 남은 김치찌개를 휘휘 저으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한가득 먹으라고, 질리도록 먹으라고.
그렇게 계속해서 챙겨주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을까?
질릴만큼 쏟아지는 사랑을, 나는 해본 적이 있을까.
김치찌개를 휘휘 젓던 손을 멈추고,
글을 적던 손가락도 멈춘다.
이 문장을 생각할 때면,
나는 확실하게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질리도록 주고 싶은 것.
그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을까.
국물은 졸아버리고, 건더기만 남아있는 김치찌개.
물을 부어서 다시 끓이고, 끓인다.
질리도록 넘치는 사랑을 받아놓고도,
나는 또 받고싶다.
그래서 물을 다시 붓는다.
고유의 맛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맛있네.
질리도록 넘치던 김치찌개를 떠올린다.
엄마, 나 오늘은 김밥 먹고 싶어!
그렇게 휘휘 저으며 마지막 김치찌개를 먹었다.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