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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싸울 '맛'이 아니었는데.

수프에 밥 말아먹기!

by 세진


여러분은 수프에 밥을 말아먹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 제가 소개할 건,
수프에 밥 말아먹기입니다.


어렸을 때 초등학생 시절, 급식실에 수프가 나오는 날이면

우리 반은 꼭 싸웠었다.


soup-5690827_1280.jpg 출처 - 픽사베이


“맛없게 수프에 밥 말아먹어!”

“너가 알아?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작은 목소리로 싸우던 건 언제나 큰 목소리가 되었다.

우리 반 딴에는 장난으로 크게 이야기 했다고 말하지만,

선생님은 가끔씩 숟가락을 놓고 달려왔었다.


나는 언제나 수프는 수프대로만 먹는 사람이었고,

친구는 수프에 밥도 말아 먹는 사람이었다.


내가

"수프에 밥을 말아먹으면 맛있어?

이상할 거 같아."라고 해도,


친구는 수프에 밥을 말아먹었다.

"이거 꽤 맛있어."

그런 한 마디만 하면서.


그러면 나도 그런 친구의 맛을 존중하며

수프를 떠먹었다.


물론 다른 친구들과는

매번 큰 소리로 "수프에 밥을 왜 말아 먹어!"라면서

서로 장난을 쳤다.


서로가 서로의 입맛을 이해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싸우던 '맛'.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후.

혼자 수프를 끓이고

밥을 따로 퍼 담은 어느 날이었다.


수프만 먹기에는 너무 허전해서

밥을 따로 퍼서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초등학생 시절에

수프에 말아먹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언제나 당당하게 내 앞에서 밥을 모두 말아버리던 그 친구.


그 생각이 나서, 나도 수프에 밥을 말아보았다.

대체 무슨 맛일까.

수프에 밥을 왜 말아먹는걸까.

비주얼적으로는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눈을 질끈 감고,

한 입 떠 입에 넣었다.



예상보다 끔찍한 맛이 아니었다.

먹을만하면, 먹을만한 대로.

그런 맛이었다.

생각보다 조화롭고,

먹을만한 맛.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싸울 맛이 아니었다.


그때 깨달았다.

입맛은 다 다르다는 걸,


모든 조합엔

의외의 맛이 숨어 있다는 걸.


그리고,

그렇게까지 싸울 맛은 아니었다는 걸.


남아있는 수프 밥을 휘휘 저어 한 입 더 넣었다.


세상에는 수프에 밥 말아먹기처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조합들이 존재한다.

나 역시도 수프에 밥을 말아먹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왜 따로 먹지 않는거야!"라고 소리치며

장난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에

수프에 조그마한 밥을 말아 먹어보았다.

그리고,

왜 그렇게 먹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까지 싸울 맛도 아니었는데, 참 열정적으로 싸웠었구나.

어렸기에 가능한건지,

서로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너무 컸던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 둘다였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수프에 밥을 꾸욱 - 한 입 떠 먹는 순간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내가 절대 하지 않을 거 같던 조합.

그 조합이 의외로 맛이 있었고,

내 생각보다 끔찍한 맛이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렇게까지 싸울만큼

엄청나게 기괴한 '맛'도 아니었다는 사실이

내 마음에 와닿게 되었다.



어디 수프만 그러랴.

부먹(부어 먹기) vs 찍먹 (찍어 먹기)에 논쟁도 마찬가지.

이러한 먹거리의 논쟁은

사람들이 열띠게 싸우는 논쟁이 된다.


하지만 서로 바꿔서 먹어보면

사실 모두 수긍할 만 하다.


그렇게 먹는 이유가 존재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사실은 그렇게까지 싸울 맛도 아니었던 거다.
다 각자의 장점이 있으니까. 다 의외인 맛이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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