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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작.

길을 걸을 때 나는 겨울의 사부작 소리.

by 세진

길을 걸을 때면 보통 노래를 들으며 걷는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주변을 살피며 걷는 것은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 중 하나다.

템포에 몸을 맡기고 길을 걸을 때면 온 세상이 나의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은 그러한 노래도 없이 길을 걷고 싶을 때가 있다.


그건 바로...


사부작.


겨울에, 눈을 밟으며 걷는 소리에 집중하고

싶을 때다.


눈을 밟을 때 나는 소리에 집중하고 싶은 순간에, 나는 이어폰을 꽂지 않는다.

사부작- 하며, 살며시 밟히는 눈의 소리를 듣기 위해.


사부작거리며 밟히는 눈의 소리 집중하는 겨울 낮.

깊은 하얀빛이 온 세상을 비춘다.


모두가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

빙판길에 뿌려져 있는 소금을 지나칠 때

오직 들리는 소리라고는

나의 걸음걸이 소리일 때면

겨울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또, 겨울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소리를 실감한다.


고요하고 차분한, 도시의 소음조차 없는 골목길까지 갖추어졌을 때

사부작 소리는 더욱 빛을 발하기도 한다.



사부작. 사부작.


나의 부츠와 길이 닿는 소리.

둘이 만들어낸 고요한 소리가,

겨울이라는 시기를 실감하게 한다.


나는 추운 겨울을 너무 싫어한다.

차가워지는 볼, 아무리 핫팩을 해도 추워지는 손 때문에.


그럼에도 그러한 겨울을

가끔이라도 좋아하는 것은, 겨울이 만들어내는 폭설 속 사부작 거리는 소리 때문이다.


시끄럽지 않은 골목길,

눈과 소금이 녹아 흐물거리는 길,

하얗지만 포근한 겨울만의 '햇빛'까지. 겨울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 눈이 올 때면 조그마한 작은 관심을 준다.

사부작 - 하는 소리로 정체성을 깨워주며.



으 - 추워.

차가워진 볼, 손은 주머니에 넣고 패딩을 감싼다.

발자국 몇 개를 남겨두고는 얼른 자리를 벗어난다.


고요한 소리 속에 오래 머무르기에는

나는 점점 바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문득 그런 사실을 실감하고 나면,

감싸고 있던 패딩에 괜히 찬 공기가

더 들어오는 거 같다.


어른이란 무엇이길래 사부작 거리는 발자국마저 오래 즐길 수 없는 걸까.

문득 씁쓸함을 느껴 뒤돌아보니,

한 발자국이 눈에 띈다.


내가 즐기면서 남긴 발자국에만,

무언가가 스며든 거 같이 보였다.


즐기며 걷던 발자국에 더욱 시선이 갔다.

그렇지만 다시 뒤를 돌아 걸음을 옮겼다.


이따 집에 올 때면 지쳐서 다 잊겠지.

그래도,

집에 올 때 지친 걸 잊을 수 있도록

남아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눈길이 있던 공간을 벗어났다.

오늘따라 공기가 더 차다.

한파가 아직도 안 끝났나 보다.

그런 건가 보다.


그제야 이어폰을 꺼내서 귀에 꽂는다.

그나마 귀라도 따뜻하게 해 줘야지,라

핑계를 대며.


사부작,

잠깐 즐긴 여유만으로 행복했지만.

다시 떠올려봤을 때

그 사실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도 이제는 정말 어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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