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갑상선 항진증이라고 작년 가을 진단을 받았다. 운 좋게 빠른 진단을 받아 호전이 잘 되었고, 의사 선생님은 3개월마다 검사와 진료를 받으면 될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2개월 간 어학연수를 가기로 계획했다고 하니, 권하지는 않겠지만, 기회가 좋으니 잘 다녀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이가 쳐지면 바로 병원에 가서 채혈을 하고 약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두 달간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이 작용했다. 연수를 시작하고 둘째 주가 지나자 아이가 울면서 내 수업하는 강의실로 찾아왔다. 몸이 아프다고. 좀 쉬면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숙사로 돌아가 아이를 뉘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평소와 다르게 처짐을 느꼈다. 땅이 훅 꺼지는 느낌이라는 말을 했다. 갑상선 저하증인줄 모르고 땅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며 며칠을 고생했다던 지인의 말이 번뜩 떠올랐다. 이것이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지체 없이 병원에 가서 채혈을 해야 하는 순간인 건가 하는 두려움이 올라왔다.. 일단 아이를 침대에 눕게 한 후, 꿀차를 타줬다.
점심을 먹고도 첫째가 나아지지 않았다. 둘째는 자기도 덩달아 쉬겠다고 조른다. 그래. 일단 한발 물러서자 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두려웠다. 모든 것을 멈추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부원장님께 아이의 병을 말씀드리고 만약의 경우 가는 병원은 어떤 곳인지 여쭤보았다. 부원장님의 사모님도 아이와 같은 갑상선 항진증이라고 하셨다. 중간에 저하증이 오기도 했는데 병원에서 검사받고 약 받아서 무탈하게 잘 지내오셨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앞서 경험해 본 분이 옆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교환학생으로 온 간호학과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이곳 병원은 어떤지. 권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말에 불안하였지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의료공부를 하는 대학생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되었다.
타국에서 아픈 것은 언어가 능숙하지 않기에 더 불안하다. 게다가 나의 말 하나하나가 중요하기에 언어를 더 잘 쓰고 싶은데, 그것은 역부족이기에 마음이 더 답답했다.
운 좋게, 아이는 푹 쉬고 나니 다음날 컨디션이 한결 좋아졌다고 한다.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마닐라에 도착해서도 아이는 얼마나 긴장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불안했을까. 엄마인 나 혼자만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바라보는 아이의 긴장된 마음까지 헤아리지 못했다. 낯선 환경에서 정신없던 엄마를 소리 없이 도와주느라 아이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몸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늘 일찍 일어나는 첫째가 아침에 눈 뜨기가 힘든 것을 단순히 환경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무심한 나를 탓하며, 아이에게 기분 전환이 될 만한 외식을 다녀오기로 했다. 어학원에서 제공해 주는 쇼핑몰 픽업 서비스는 매주 평일 저녁 2회로 운영되었다. 마닐라의 어두운 밤이 무서운 우리가 두려움을 덜고 바깥세상을 구경할 좋은 기회였다.
아이는 한국에서도 아직 먹어보지 못한, 유튜브에서만 본 두 끼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한국보다 비싼 가격이지만, 그걸로 컨디션이 회복되면 오케이라는 마음으로 저녁에 아이들과 밴을 타고 바깥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