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 분산은 여행에도 필요하다
외국에서 돈이 없어서 고생해 본 경험은 이번이 두 번째다. 5박 6일 오키나와 일정에서 쓸 돈을 환전은 80만 원 정도 하고, 나머지는 은행 현금카드에 넣었다. 핀번호 오류가 5번 나는 바람에 마침 금요일 저녁이라 은행과 연결이 안 되었다. 카드사였다면 핀번호 오류를 바로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은행사 카드라 주말에 불가능하고 은행 직접 방문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렌터카 비용 40만 원을 지불하니, 하루에 식비포함 10만 원 쓸 수 있었다. 여행 가서 졸지에 절약모드로 돌변했다.
그때의 경험을 반추해서 나는 더 알아보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약간의 환전을 하는 것이 현명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가는데, 어린 두 딸까지 대동하는 데 현금 보유 방법이 하나밖에 없었다니 무모했다. 큰 금액을 들고 다니는 것이 위험하니 모두 카드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인출해서 쓰자는 마음만 앞섰던 것 같다.
다행히 어학당에서 세끼의 식사를 준비해 주시지만, 아이들은 매일 간식이 필요했다. 간식을 사먹이지 못하게 되니, 눈앞이 캄캄했다.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을 때의 허기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4일 간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프더니, 제주항공에 탑승해서 비상으로 들고 간, 일본에서는 쓸 수 없던 국내용 카드가 결제되는 것을 알고부터 큰 식욕이 사라졌던 경험이 떠오른다.
2달의 시간 동안 아이들과 지내야 하는데 현금 없이 지낼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올라오니 초조하게 인터넷을 검색한다.
트래블로그카드 마닐라 인출, 트래블로그카드 인출 가능 은행 등등을 검색해 봐도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사람들은 다들 환전을 위해 달러를 가져온 것인가. 물어볼 곳도 없고 답답하기만 했다. 필리핀 여행 관련 카페를 찾아보았다. ATM기에 잔고가 충분하지 않아서 인출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답글을 보았다. 이런 경우가 있다니.
어학당에서 현금을 인출하라고 따로 보내주신 인턴과 BPI은행을 가보았지만 기계의 소리가 돈이 출고되는 소리가 아니었다. 역시나 안된다고 나온다. 1층의 BDO에서도 안되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 BDO은행의 ATM기에서 출금을 시도하니, 기계가 촤르륵 돈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급하면 사람의 촉이 기계에도 발동되나 보다. 그렇게 만 페소씩 250페소(한화 6천 원 정도)의 수수료를 주고 현금을 2 번 인출했다. 마음이 두둑해지고 자신감이 생겼다.
훗날 알았다. 필리핀 내 ATM기 내 ‘설정된 금액 이상‘으로 인출이 안되고, 편의점 내 기계는 더러 천 페소 이내로 굉장히 적은 금액만 출금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외국인은 한번 출금 시 250페소, 한화 6천 원의 수수료가 책정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최선은 출금수수료를 최소로 줄이는 것.
좀 전에 언급한 BPI와 차이나뱅크는 2만 페소까지 250페소의 수수료로 현금 출금을 할 수 있다고 하니, 같은 조건이면 두 은행에서 출금하시기를 권한다.
트래블로그카드는 환전수수료가 100% 무료라 카드 사용이 가능한 상점에서는 최적이다. 2만 페소까지 무료인 BPI나 차이나뱅크에서 출금한다고 가정할 때, 24만 원 정도를 출금 시 6천 원의 수수료는 4% 정도 비율이 된다. 타 은행에서 1만 페소에 250페소의 수수료를 낸다면 8% 의 환전 비용이 드는 셈이다. 필리핀 페소는 주요 통화가 아니라 은행 수수료도 꽤 높다. 달러를 환전해서 필리핀 페소로 재환전하는 불편함을 감안할 때도 매우 유용한 카드이다. 현금 보유의 위험을 줄이고 싶을 때도 유익하다.
현금 인출이 안된다고 당황하지 말고, ATM의 잔고가 남아있지 않거나, 인출 한도가 있을.수 있음을 염두에 두자.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에서 약간의 환전을 해오는 것이 안심이 될 것 같다. 특히 나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할 때는 더더욱 대비하시기를. 어쩌면 나처럼 계획성 없는 P는 드물지도 모르겠다. 외국을 여행한다는 것은 내가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지내야 하는 위험이 있다. 이를 예상해서 약간의 대비를 마련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