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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라니 Apr 02. 2024

두려움에 놓친 첫째 주 주말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용기


 마닐라 공항에 도착한 1월 5일 저녁, 비행기를 놓칠 뻔한 아찔한 경험을 한 우리는 기숙사에 도착한 후 긴장이 풀려서인지 기진맥진 쓰러지고 말았다. 겨우 짐을 정리하고 다음날 토요일에 겨우 눈을 떴다. 9시까지인 아침 식사를 놓치지 않으려고 30분 전에 아이들을 이끌고 겨우 밥을 먹었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먹는 시간. 그래도 우리 셋은 한 테이블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씩씩하게 밥을 먹었다. 아이들과 기숙사 건너편의 마트로 간다. 출발하기 전에 집에 있던 7000원 정도의 페소로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개당 700원 꼴인 아이스크림, 2000월꼴인 버블티를 맛보며 물가가 굉장히 저렴하다고 느꼈다.

 

 아이와 맞이한 첫 주말, 모든 게 낯설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가까운 곳에 이동하는 것조차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낯선 곳인데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가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긴장감과 불안함 속에 어학원에서 제공해주는 셔틀버스를 타고 SM North 쇼핑몰로 이동했다. 감사하게도 쇼핑몰은 안전하고 쾌적했다. 물가가 한국가 비슷한 것은 흠이었지만,

 좋은 환경이었지만 두려움 때문에 긴장한 채 돌아다녀야 했다. 그 팽팽한 마음은 마음은 주변을 즐길 여유를 주지 않았다.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식당 앞 줄을 보고 기다리면서까지 맛있는 지도 모를 음식을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쇼핑몰에서 아이들과 필요한 생필품을 몇 개 사고, 현금 인출을 못해서 역시나 불안한 마음으로 기숙사로 돌아왔다.

 엄마인 내가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쇼핑몰을 이끌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만 가득했던 첫째 주였다.

 

 둘째 주에는 용기를 냈다. 여전히 혼자 이동하기는 두려워서 아이들이 아이돌처럼 예쁘다고 잘 따르는 언니들이 베니스몰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행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녀들의 흔쾌한 동의로 우리는 처음 그랩에 올라탔다.

  

 


 어떤 곳도 갈 수 없는 두려움을 대학생들과 베니스몰에 다녀온 것으로 물리치니, 그 다음은 매주 주말 어떤 곳을 다녀올 지 계획하는 것이 즐거웠다. 마닐라의 치안이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 혹여 그랩기사가 엉뚱한 곳으로 갈까 봐 그랩을 타도 긴장감을 놓지 않고 바짝 깨어있었지만. 안전지대를 벗어난다는 것에 용기가 필요했지만 조금씩 활동 반경이 넓어지는 것만으로도 내게 큰 성취였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영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쾌적한 방을 누릴 수 있는 호텔을 다녀오는 정도여서 아쉬움도 살짝 남았다. 로컬 사람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장소도 다녀오면 좋았을 텐데. 알면 알수록 갈 곳도 볼 곳도 먹을 것도 많은 마닐라는 한번 더 가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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