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하굣길에 들러서 먹던 동네 상가 분식집의 밀떡은 내 인생의 밀떡이었고, 고등학교 때 역 앞 육교에 찾아오던 푸드 트럭의 쌀떡볶이는 다소 과장하면 내 주식이었다. 독서실이 있던 상가 1층에는 슈퍼마켓이 있었는데, 입구 옆 매대에서 팔이 굵은 아저씨가 요리하던 짜장 떡볶이도 아직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리 삶에는 떡볶이가 있고, 누구나 인생의 떡볶이를 하나쯤 품고 산다. 떡볶이는 각자에게 현재의 것이기보다는 과거의 것 같다. 그때 먹었던 그 떡볶이, 각자가 안고 사는 떡볶이가 다르기 때문에, 쉽게 누군가에게 이게 최고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주관적인 음식 그것이 떡볶이 같다. 떡볶이에서 맛집을 논하기 어려운 점이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때 그 떡볶이들이 객관적으로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어서 여태 그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조심스럽지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 안에 담겼던 고추장 몇 스푼, 설탕 몇 스푼보다 중요한 건, 추억 열 스푼과 웃음 열 스푼이리라. 하굣길의 낭만, 친구들과의 수다, 가족과 함께한 순간들이 담긴 떡볶이는 평생을 걸쳐 인생의 떡볶이로 남게 된다. 추억이 지배하는 음식, 그것이 떡볶이이다.
떡볶이를 먹는 일은 새로운 추억을 쌓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떡볶이는 보통 현재나 미래이기보다는 과거의 것이어서, 당장 현재를 쌓기보단 자꾸 과거로 향하게 된다. 떡볶이를 먹는 일은 추억을 불러내는 일이다. 그래서나는 떡볶이를 먹을 때마다 이 떡볶이는 어떤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줄까 기대하게 된다. 모든 떡볶이는 어떤 추억으로 향하는 길잡이이다.
추억이 모여 인생을 이룬다. 남겨진 추억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물론 나는 지금 현재를 살고 나에게는 장차 다가올 미래도 있지만, 현재 진행형인 '인생'을 설명하는 건보통 태어나 현재에 이른 순간순간의 결과물, 즉 희망이기보단 추억이다. 그래서, 유독 추억이 지배하는 음식, 떡볶이를 먹을 때마다 나는 떡볶이가 인생 같다. 떡볶이를 먹으면서 추억을 열어보고 추억 안에서 인생을 본달까.
내 추억의 떡볶이집은 모두 문을 닫았다. 아쉽지만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 추억만큼은 남아있는 점이다. 그때의 추억들. 그때의 기억들. 밀떡을 먹을 때 나는 예전 그 하굣길 분식집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쌀떡을 먹을 때 그 푸드트럭 앞에서 보내던 시간을 떠올려본다. 내가 그 가게들의 폐업을 막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적어도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고 간직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그렇게 오늘도 어떤 떡볶이집이 새롭게 문을 열고, 어떤 떡볶이집이 아쉽게 문을 닫을 것이다. 그나마 기록이 쉽고 검색도 쉬운 요즈음이다. SNS에 사진을 보관하기도 하고, 타인의 기록을 통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떡볶이들을 쉽게 사고 만들 수 있어서 조금만 노력한다면 원하는 추억을 찾아갈 수 있다. 또 좀 다르면 어떠하리? 추억하려 노력하는 한 내가 품은 그 떡볶이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내가 먹는 이 떡볶이는 나를 또 소중한 추억으로 인도해주리라.
물론, 아무리 사라진 것을 추억하려 한들, 추억의 맛집이 계속 존재하는 것만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화당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행운아라 아니할 수 없다. 1980년부터 명동을 지켜온 전설의 떡볶이집 명화당. 유독 변함없다 평가받는 그 맛은, 당신이 가진 눈부신 날의 추억들을 그대로 꺼내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