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명작 만화 <슬램덩크>는 90년대를 강타한 초인기작이었고 현재까지도 여러 세대에 걸쳐서 사랑받는 명작의 반열에 올라있다. 슬램덩크는 개성이 강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농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표현한다. 그 과정에서 모두가 주인공이다라고 이야기해도 무리가 아닐 만큼 각 인물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이루어진다.
"슬램덩크의 주인공이 누구라고 생각하냐?"
우리 사무실의 브로맨스(라고 쓰고 콤비라고 읽는다) 대치동 K와 신도림 이니에스타는 늘 밥상머리에서 다양한 주제를 두고 진지한 토론을 벌인다. 그 이야기들은 보통 생산적이기보다는 소모적이기만 한 것들이지만 또 그게 가끔은 못 말리게 매력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후자에 걸린 날이었다. 그 슬램덩크의 주인공이라니.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 중 적어도 두세 명 중 한 명은 청춘을 담가봤던 그 슬램덩크의 주인공이라니.
원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다 보니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누가 제일 인기가 많으냐라든가 누굴 제일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이 아니다. 누가 '주인공'이냐는 질문이다. 가볍게 읽은 사람이라면 툭 하니 쉽게 대답할 일이지만, 조금만 열정을 가지고 읽은 사람이라면 약간 고민을 할 수밖에 없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게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적벽대전을 앞둔 주유와 제갈량이 손바닥에 적은 불 화 자를 맞춰봤듯이, 우리 세 명은 거의 동시에 정대만이라 답했다. 물론 이야기를 끌고 이어나가는 인물이 강백호라는 것은 분명하고, 그가 이야기의 축이 되는 인물이라는 점을 다툴 수 없다. 그러나 정대만을 보라. 준수한 외모, 톱클래스의 실력, 스승에 대한 존경심, 농구에 대한 열정, 눈물겨운 사연을 가득 안고 코트로 돌아온, 쏘쿨하면서도 불꽃같은 남자라니. 그에게는 따로 로맨스도 없다. 왜냐고? 로맨스 없이도 우리의 정서를 여러 빛깔로 충만하게 채워줄 수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진짜 주인공은 핸디캡을 두고 싸우는 법. 정대만은 탈선으로 인한 공백으로 본래의 능력을 너프 당한 채 이야기에 참여한다. 절정의 기량을 뽐내다가, 유소년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헛되이 날리지만, 갈등을 거쳐 마음을 다잡고, 고초를 겪으면서 후회도 많이 하지만 의연하게 계속 정진한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는, 서있지도 못할 것처럼 보이는 상태에서 연신 3점 슛을 성공시키고, 이젠 링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읊조린다. 아... 불꽃남자 정대만 당신은 대체... (울먹) 90년대, 슬램덩크의 시대에 청소년이었던 이들에게 정대만은 불꽃이었다. 그래. 슬램덩크의 주인공은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브런치 창을 닫고 슬램덩크를 찾으러 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이제 그만 떡볶이를 먹어야 할 시간이다. 살아있는 전설이 된 떡볶이 맛집, 애플하우스로 향하는 길에 문득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애플하우스는 떡볶이 맛집인가? 무침만두 맛집인가? 애플하우스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슬램덩크의 연재에 다소 앞선 1987년에 오픈해서 적어도 90년대부터 내로라하는 전국구 맛집으로 명성을 떨쳐온 애플하우스. 자작하게 졸여먹는 맛깔난 즉석떡볶이가 있는 애플하우스는 분명 즉석떡볶이 맛집 중의 하나로 분류되나, 사람들이 으레 애플하우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무침만두(무침군만두)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 무침만두의 빨간빛은 화가 났다거나 부끄럽다거나 해서 나는 그런 빛깔이 아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려서 상기된 스포츠 선수의 얼굴을 연상케 하는, 터질듯한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건강한 혈액이 온몸을 뜨겁게 달구어 피어 오르는 열정의 붉은 빛깔이다. 무침만두의 소스, 이는 마치 청춘드라마의 클리셰와 같달까. 고전적인 양념치킨이 떠오르는 매콤달콤한 소스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맛이지만 확실하게 우리를 사로잡는다. 반면, 그 절묘한 당도와 묘하게 흐르는 향신료의 느낌은 아류작들과 차별화 되는 명작만의 개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바삭한 만두피의 식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속은 거의 비워뒀다. 아. 이것이야말로 공백이 주는 아름다움이다. 비워둠으로써 부족함으로써 비로소 가진 것들이 더 선명하게 부각된다. 그래서 나는 애플하우스의 무침만두를 보면 정대만이 생각난다. 이야기의 토대를 이루는 즉석떡볶이는 강백호, 사람에 따라서는 즉석떡볶이보다 맛있다는 볶음밥은 서태웅이다. 아마 취향에 따라 선택하게 되는 일반떡볶이는 송태섭, 순대볶음은 채치수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생각건대, 애플하우스라는 전설적인 명작의 주연은 무침만두이고 떡볶이는 조연이라는 주장이 다수설이며 나도 같은 입장에 서있다. 그러나 스토리를 끌어나가는 주된 힘은 떡볶이에서 나온다는 소수설 또한 강경하다. 답이 무엇인지는 각자에게 맡긴다. 슬램덩크가 그랬듯이 이 글도 열린 결말로 마무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