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은 부하 마속(馬謖)에게 수천의 군사를 주며 가정(街亭)이라는 지역을 수비할 작전을 지시한다. 그런데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제갈량의 작전을 따르지 않고 산 위에 진지를 구성한다. 위(魏)나라의 장합(張郃)은 산 위의 마속군을 포위하여 보급로를 끊고 지구전 끝에 전멸시킨다. 이렇게 가정 지역을 잃은 촉나라 군은 더 이상의 전투를 포기하고 허무하게 철수한다. 제갈량은 마속을 아꼈지만 군법을 예외 없이 적용하여 지시에 따르지 않은 그를 처형한다. 제갈량은 처형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마속의 사후 그의 가족들을 챙겨준다.
사자성어 "읍참마속"이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 일화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한편으로는 권력의 비정함, 그리고 정치가에게 요구되는 결단력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제갈량에게 마속은 아끼는 부하였고 꽤 유능한 인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시를 따르지 않아 전쟁에서 패하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군사를 잃었다. 이런 마속의 잘못은 너무도 컸고, 그 잘못을 일벌백계(一罰百戒) 하지 않으면 기강이 무너지고 같은 문제가 재발할 수도 있었다.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서 그리고 국가를 이끌어나가는 정치가로서 제갈량에게 이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자 그럼 떡볶이 이야기를 할 시간이다. 신토불이 떡볶이의 세트 메뉴 이른바 '신토불이 세트'는 야끼만두, 계란, 핫도그 위에 떡볶이를 범벅하여 제공된다. 계란은 떡볶이의 구성요소라 봐도 무방하고, 야끼만두는 떡볶이 하면 생각나는 최고의 토핑이다. 둘 다 분식계를 호령하는 영웅호걸들이라 세트를 이룸에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 핫도그 자네는 왜 여기에 있나? 고전적인 핫도그를 잘 익힌 후 썰어서 떡볶이 소스에 범벅을 하였는데 그 맛이 영 따로 논다. 떡볶이 특유의 일사불란한 조화가 없다. 대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생각건대, 핫도그가 신토불이 세트에 들어간 것은 맛의 조화를 기대해서가 아닌 듯하다. 세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단품으로 파는 메뉴 모두를 다 넣은 조합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핫도그는, 떡볶이집에서 떡볶이 휘하에 있는 음식으로서, 다른 음식들처럼 떡볶이 양념의 지시에 따라 분식집을 잘 지키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개성이 강한 핫도그는 그렇지 못했다. 빵껍질은 떡볶이 양념에 젖어 눅눅해졌고 겉바속촉 해야 하는 본연의 식감을 잃었다. 달달한 빵껍질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짭짤한 소시지의 맛은 안 먹어도 예상 가능한 것처럼 떡볶이 양념의 방향성과 따로 논다. 컷팅된 핫도그는 막대에 꽂혀 있어야 하는 핫도그만의 정체성도 잃어버렸다. 눅눅한 빵과 그에 겹쳐 있는 짭짤한 소시지 조각만이 목격될 뿐, 핫도그는 접시 위에서 길을 잃었다.
그렇지만 신토불이 떡볶이가 핫도그를 처형할 수... 아니 제외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일단 신토불이의 떡볶이는 초일류다. 약간의 부조화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맛있다. 그리고 세트에서 핫도그를 빼는 순간 이건 이제모두가 기억하는 그 신토불이 세트가 아니게 된다. 신토불이 떡볶이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핫도그와 범벅된 떡볶이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토불이의 명성은 이미 그렇게 굳어져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쉽사리 핫도그가 배제될 일은 없어 보인다. 이를 외면하는 것은 경영자 입장에서 합리적이지도 않고, 떡볶이라는 음식이 가지는 추억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바람직하지도 못한 일이리라.
게다가 신토불이 세트의 핫도그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강렬한 팬덤이 존재한다. 언젠가 한 지인에 의해 이런 간증(干證)을 들었다. '매운 걸 못 먹는 사람은 핫도그로 쉬어가며 먹어야 해요!' 물론 이는 신앙이요 믿음이지 사실이 아니다. 신토불이 세트는 컷팅된 핫도그와 계란, 야끼만두 위에 떡볶이와 양념을 얹어 올리는 형태로 서빙된다. 핫도그 위에 양념이 가득한데 무슨 수로 쉬어 간단 말인가. 쉬어가려면 애초에 따로 먹는 것이 맞다. 그저 핫도그를, 신토불이 떡볶이를 옹호하기 위한 찬성을 위한 찬성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그것은 팬덤이 아니지. 때때로 맛은 미각이 아니라 믿음에서 나온다.
한편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왜 핫도그에 난리냐고. 그렇다. 신토불이 떡볶이를 이야기할 때 핫도그가 지나치게 많이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 수 있다. 이곳은 신토불이 떡볶이, 세계 초일류 밀떡 맛집이다. 그대 이 예술을 보라. 사나운 불꽃같지만 또 아름다운 붉은빛이 시선을 사로잡고, 꽤 멀리서도 느껴지는 은근한 고추 향이 후각을 자극한다. 첫 한 입에 느껴지는 단맛과 매운맛의 기분 좋은 균형감, 잘 익은 밀떡의 적당한 쫄깃함을 거쳐, 목 넘김 후 입에 남는 약간의 매콤함에 이르기까지 한 편의 시를 써도 좋을 만큼 맛있는 떡볶이로다.
이런 초일류 떡볶이를 옆에 두고 핫도그의 존폐 논쟁으로만 공론장을 달구는 것은, 마치 촉나라의 역사를 논하면서 제갈량은 제쳐두고 마속에만 집착하는 그런 과오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런 과오, 지엽적인 논의, 쓸데없는 집착, 실익 없는 논쟁이 또 사는 재미 아니겠는가. 떡볶이 덕후, 좋아하는 것에 몰두함으로써 행복을 얻는 사람으로서, 혹여나 같은 떡볶이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찾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더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그렇게,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벤 것처럼, 나는 눈물을 흘리며 핫도그를 뺐다. 핫도그는 내가 참 좋아하는 간식이고, 남녀노소 널리 사랑받는 음식이다. 신토불이 세트에 대한 강한 팬덤이 나를 비난하고 내 삶까지 위협할지 모른다. 그러나 부적절하게 활용되어 맛을 해쳤고, 그 과정에서 상당히 입맛을 잃었다. 이런 핫도그의 잘못은 너무도 컸고, 그 잘못을 일벌백계 하지 않으면 기강이 무너지고 같은 문제가 재발할 수도 있다. 이 테이블을 지배하는 고객으로서 그리고 떡볶이의 날 제정 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 이는 나에게 피치 못할 결정이었다.
재주와 기량이 뛰어난 마속이지만 자만하여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산에 올라 실패를 하였고, 그를 총애하던 제갈량이지만 군법을 세우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처형을 하였다. 혼자 있어도 충분히 맛있는 핫도그이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세트가 되면 짐이 되기도 한다. 신토불이의 개성 포인트인 핫도그를 외면하려니 속절없이 눈물이 나겠지만 조화를 위해서 한 번쯤은 핫도그 없이 먹어보자. 마속을 아꼈던 제갈량이 마속의 사후 그의 가족들을 보살펴 줬던 것처럼, 범벅에서 빼더라도 따로 챙겨 먹는 방법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