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기념하는 일은 그 기념의 대상을 본래의 의미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기록된 기억은 보통 기록되지 않은 기억에 비해 오래 남고 그렇게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기념은 기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대상의 가치를 키운다.
기념한다는 것은 조금 더 티 나게 소중함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소중한 것을 소중히 하는 삶은 참 어렵다. 그 대상이 곁에 있는 것들인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곁에 있는 것들을 당연시하며 나도 모르게 홀대하며 살아간다. 함께 하게 된 것은, 함께 하게 된 사람은, 그냥 '당연히' 함께하게 된 것처럼 생각한다. 식상한 예시로 공기라든가 물이라든가 생존에 꼭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보자. 정말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소중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영 어색하고 어째 쉽지도 않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부모님과 함께 해온 사람들은 (다들 부모님을 소중히 생각하겠지만) 그 소중함을 말하는 행위를 많이들 어색해하고 쉽게 표현하지 못한다.
우리는 보통 표현에 인색하다. 절절한 예를 들어보자. 만난 사람은 언젠가 헤어진다. 가까이 있는 소중한 사람들, 언젠가 필연적으로 그들이 내 곁을 떠나는 날이 온다. 그리고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그때 이야기할 걸, 좀 더 많이 표현할 걸 하고 지나고 나면 후회하곤 한다. 헤어지고 나면 남는 후회는 보통 소중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이다. 그 시간의 타인을 혹은 그 시간의 자신을 소중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슬퍼하곤 한다. 그래서 더 많이 소중히 하고 더 잘 표현한 사람들은 후회가 적다고도 하더라.
인류는 그렇게 후회를 쌓아온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사람들을 잃고 후회했고, 뒤늦게나마 소중히 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며 추억했던 것이 아닐까(물론 제사에는 그 외에 정치, 종교 기타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리고 또 한편으로 아직 떠나지 않은, 곁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하기 위해 생일을 축하하게 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어떤 사람의 탄생과 존재를 감사하며 그를 소중히 하기 위해서 생일을 챙겨서 축하한다. 새삼스러워 보이지만 이것은 기념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존재를 본래의 의미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다. 생일은 표현이 서툰 사람들에게 타인에 대해 소중함을 표현할 기회를 주는 계기가 된다.
그렇다.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 우리에겐 그것이 필요하다. 있는 힘껏 후회 없이 소중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크고 작은 기념일을 만들어서 그 계기로 삼는다. 밸런타인데이도, 어버이날도, 아이의 백일이건 연인 간의 백일이건 다 마찬가지이다. 품고 있지만 말고 표현하게 만들기 위해서, 있는 힘껏 소중히 하기 위해서, 후회 없이 사랑하기 위해서 기념한다. 소중하다면, 사랑한다면, 기념해야 한다.
언제였던가 10여 년 전에 해외에서 연수를 하던 중, L 씨는 외로웠고 힘들었다. 치유받고 싶어서 생각난 것이 떡볶이였다. L 씨는 시간을 쪼개 멀리 떨어진 한인타운까지 떡볶이를 먹으러 떠났다. 떡볶이집에 도착한 그는 깜짝 놀랐다. 한 접시에 미화 20불. 국내에서 천 원, 이천 원 어치일 떡볶이의 가격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말 오랜만에 만난 떡볶이였고 치유를 위해 찾은 떡볶이였다. 어려운 주머니 사정에도 귀신에 홀린 듯이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먹은 날은 수저로 소스를 박박 긁어먹었고, 두 번째 먹은 날은 공깃밥을 구해서 비벼 먹었다. 주저앉고 싶었던 힘든 시기에 떡볶이는 그를 좋은 추억으로 안내했고 추억은 그가 다시 일어설 힘이 되어줬다.
귀국해서 나와 같이 떡볶이를 먹던 L 씨는 그때 가까이에 있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절감하였다고 말했다. 이제 세월이 흘러 해외에서도 쉽게 그리고 부담 없는 가격으로 떡볶이 가게를 만날 수 있다. 밀키트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하여 직접 조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졌다. 이런 환경이기에, 나처럼 해외 생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떡볶이와 멀어지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L 씨는 가치 있는 경험을 했다. 어릴 때부터 늘 쉽게 접할 수 있었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던 떡볶이와 거짓말처럼 멀어졌던 경험. 그 결핍으로 인하여 떡볶이가 그의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달은 경험. 그래서 나는 이런 이야길 던져본다. 역시나 어떠한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기왕이면 결핍 말고 긍정적인 계기. 그래, 떡볶이의 날이 필요하다. 왜 떡볶이의 날은 없는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내 곁에 있어주는 좋은 친구 떡볶이.
떡볶이야 고마워.
늘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아무리 떡볶이를 좋아하는 나라고 해도 이런 표현은 너무 어색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소중한 것을 소중히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소중히 해야 한다. 표현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자리가 필요하다. 누군가 자리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떡볶이의 날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소중한 사람들과 만나는 날. 추억과 함께하는 날. 인생의 떡볶이를 먹는 날. 나의 인생을 축복하는 날. 우리의 친구 떡볶이도 소중히 하고, 소중한 것을 소중히 하는 법을 배우는 날. 그렇게, 떡볶이의 날 제정 운동을 시작한다.
대전을 소개할 때, 과거에는 정차 중에 서서 먹던 대전역의 가락국수를 빼놓을 수 없었는데, 최근에는 그 자리를 대전의 유명한 빵집 성심당이 차지한 것 같다. 이는 대전역 가락국수가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잊히는 가운데, 다수의 사람들이 성심당을 소중히 했고 성심당 역시 자신을 소중히 가꿔온 결과이다.
대전역 가락국수에는 애도를, 성심당에는 찬사를 보내며 나는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만포분식, 대전 최고의 떡볶이집 만포분식. 달지도 맵지도 짜지도 않은 이 적당한 맛의 떡볶이는, 대전의 자랑이 될 충분할 자격이 있고 장차 성심당만큼 사랑받을 명물이다.
대전광역시 여러분, 만포분식 한 번 안 키워보시렵니까? 사랑해주십시오. 기억해주십시오. 자꾸자꾸 외쳐주십시오. 기념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