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넓어지는 아내의 상식 중엔 이런저런 모임의 아줌마들 수다에서 얻는 것이 많으리라. 그리고 그런 경우를 자기 입장에 대비시켜 보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출근하려는 내게 아내는 눈썹을 추키며 물었다.
"당신, '공일공 삼삼사오'가 누구야?"
"뭔 소리야?"
"통화 가능한가요?라고 적혀있던데?"
밤새 내 핸드폰을 뒤진 모양이다.
"'비가 오네요.' '국화차 향기가 좋군요.'는 또 뭐꼬?"
반말투로 보아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친구들한테 배운 대로.
나는 가끔 컴퓨터에 관한 질문 때문에 여류 동호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문자로 전화 걸기 적당한 시간을 묻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고, 그냥 재미로 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성 간의 대화에 연애감정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는데 어떤 땐 발신 번호가 일부만 찍히기도 한다. 그때는 '오호 센스 있는 여자네!' 했었는데 이번엔 그것이 문제가 될 줄이야.
010-3345 가 누구냐는 것이다. 다 찍힌 번호면 의심이 없는데 오히려 반 만 찍힌 번호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말문이 막혔다. 난감해지면서 보넨 이의 센스가 원망스러운 순간에도, 거기서 밀리면 낭떠러지로 밀릴 수도 있기 때문에 크게 소리쳤다.
"그거 친한 직원이 나 골탕 먹이려고 장난친 거야!"
지갑에서 비상연락망을 펴 코앞에 들이대며 펄럭였다. 하늘의 도움으로 국번호가 같은 전화번호가 있어서 내 목소리는 더 커졌다.
"걸어봐 걸어보라고, 아이고 내가 이러고 세상 살아야 돼?"
아내는 그걸 들고 안방으로 씨근대며 갔다. 큰일 났다. 그 직원은 나와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인데, 나는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믿는 하나님은 가끔 내 편이 되기도 한다. 나의 불행은 그녀의 불행과도 직결되니까.
다시 돌아선 그녀는 비상연락망을 접어 내게 그냥 내밀었다. 그 직원과 통화가 된다 해도 이건 창피한 일이 아닌가 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 대목에서 나는 악센트를 높였다. 공수 전환에도 시기가 있는 법. 시기는 한 번 놓치면 멀리 달아난다.
"그게 수상쩍은 전화면 내가 그걸 왜 안 지웠겠어? 내가 그렇게 머리 나쁜 줄 알아?"
회사 갔다 와서 다시 얘기해, 구사일생으로 출근했다. 머리 나쁜 자는 한 눈 팔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