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당신 어머니!
지리산 등줄을 타고 칠백 고지 위에 살던 옛날 고향 집은 겨울이면 참으로 추웠습니다
산중에 겨울바람은 자주 눈을 동반해서 불었고
겨울 동안에는 흰 눈 속에 덮여 살아야 했습니다
고드름도 얼마나 두껍게 얼었던지요
소 여물을 끓일 때 수돗물이 얼어서 물 대신 눈과 고드름을 넣고 소 죽을 끓였죠
밤은 참으로 추웠지만 앞 산과 뒷산의 흰 눈은 달빛 마냥 반짝여 주었습니다
깊은 밤 찐 고구마와 동치미를 먹는 재미는 잊을 수 없는 그리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추웠던 우리 마을에 구정 설이 얼마 남지 않으면 해마다 오셨던 뻥튀기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뻥!' 하고 소리가 나면 무서우면서도 옥수수, 쌀, 콩 같은 것이 '뻥!' 하고 튀어나올 때마다 한 줌씩 주워 먹었던 재미는 먼 추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루 종일 뻥튀기를 튀기신다고 아무것도 드시지 못 한 아저씨에게 김치와 밥을 넣어서 김치 국밥을 따뜻하게 만들어 대접을 하셨던 어머니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죠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얼었던 사람의 마음을 녹인다면서 항상 이웃과 정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라고 하셨죠
어머니, 그때 어머니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서 지금은 제가 칼국수를 끓이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 아빠라는 사람으로부터 두들겨 맞았던 정신 장애를 겪고 있는 큰 딸이 있고 아들은 막내딸 교통사고 나던 날 머리가 깨진 것을 보고 그날 이후로 말도 더듬고 자폐증 환자와 일반인 사이의 경계점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진도견, 두 눈이 안 보인 채 버려진 몽돌이, 유기견들, 허리부터 뒷다리까지 사람에게 맞고 버려진 아이까지 제 어깨에 올려진 무게가 참으로 무겁습니다
오늘도 책임의 무게를 느끼며 따뜻한 칼국수를 끓여 냅니다
어머니!
저는 삶이 지옥일 때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불 속에서 남몰래 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내어 웁니다
울고 나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러고는 따뜻하고 쫄깃한 칼국수를 끓여 냅니다
처음 칼국수를 끓일 때는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참으로 정교하며 시력이 좋아야 함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음식이 익었는지 확인하려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뜨거운 김이 안경 속으로 차올라 흐릿한 눈은 더 흐려지기만 했습니다
포스기에 기록된 메뉴와 가격을 빨리 찾지 못해서 손님들로부터 야단을 맞고는 했습니다
카드 결제 사용법이 몸에 익지 않아서 가지고 계신 현금만 주고 가시라고 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이너스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늦게야 알게 되었습니다
나쁜 시력 때문에 행동은 느렸고 그로 인해 손님들께 많이 폐를 끼쳤습니다
빨리 달라는 요청에 덜 익은 칼국수를 내어드려서
혼이 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어머니!
저는 집중력, 이해력, 기억력이 일반인들보다 많이 떨어져서 살아가는 것이 불편합니다
그러기에 반복과 연습을 통해서 제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칼국수가 완성되기 까지는 끓이고 또 끓여서
내 안의 모든 감각 기능들이 서로 소통과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노력하고 연습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 희미한 세상에서 끓이는 칼국수도 자연스럽게 모양이 되어 갔습니다
요즘은 왼쪽 눈마저 사물이 여러 개로 겹쳐 보여서 캄캄해지
육신의 장애와 정신의 장애를 다 가지고 있는 저의 세상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그런 과정의 길입니다
딱 한 번만 맑은 세상을 보는 게 소원이라고 밤마다 울었던 일도 많았습니다
나의 뺨은 눈물을 등에 안고 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똘망 똘망한 눈으로 저에게 와서 안기는 버려져 상처받은 반려견들을 위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황태로 진하게 육수를 우려내 면을 넣고 끓인 다음 감자와 호박을 채 썰어 넣고 빨강, 파란 고추와 대파로 아름다운 색을 입혀 검은 김가루, 참깨 가루를 뿌려서 고소함을 더해줍니다
먹어본 사람은 아직 많지는 않지만 먹어본 사람들은 최고의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얼마 전 손님 한 분께서 오셔서 지금까지 먹어본 칼국수 중 최고의 칼국수를 먹었다며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고 가신다며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너무 맛있다며 국물까지 다 드시고 가실 때는 내 마음에서 뿌듯함이 절로 감사와 행복의 미소로 번져 나옵니다
특히 혼자 오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처음 들어오실때는 멋쩍어 하십니다
칼국수 한 그릇도 되냐고 물으실 때 빙그레 웃음으로 답을 드리고 더 정성을 들여서 끓여드립니다
어머니!
저는 그 옛날의 어머니의 따뜻한 김치 국밥을 생각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이어 받아서 제가 만든 칼국수에도 제 사랑을 듬뿍 담아서 우주의 행복까지 꾹 꾹 눌러 담아 끓여드립니다
가슴에 붉은 피멍을 안고 사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입니다
아파도 아프다고 울지 못하고 오늘도 아픈 몸을 이끌며 각 분야로 일을 찾아 나서시는 우리 어머니들을 위해 칼국수 한 그릇에 눈물겹도록 한스러운 삶을 녹여 내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가슴에 붉은 상처를 가지고 사시는 어머니들의 삶이겠지만
칼국수를 드시는 시간만이라도 따뜻한 온기와 사랑을 느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겠습니다
어머니 말씀처럼 드러나서 빛이 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여전히 저에게 살아가는 것은 쉽지도 나아지지도 않았습니다
마음만큼은 부유하고 항상 웃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아침에 저의 마당 안에 서서 떠오르는 태양을 볼 때면 죽어있는 나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깨어나 저에게 새로운 힘을 넣어줍니다
저 붉은 태양은 나의 칼국수가 되고 하늘은 시리고 푸릅니다
붉은 태양은 꽃잎 다섯 장이 있는 붉은 홍단심을 만들고 해가 지는 저녁노을은 붉은 태양에서 빛이 납니다
저녁노을 지는 붉은 해는 여 섯 개의 꽃잎이 커다란 해바라기 꽃을 만들어 냅니다
아침 해를 따라 저녁노을까지 함께 하는 해바라기 꽃처럼 힘차게 살아가겠습니다
비록 태양과 달님은 여 섯 개로 보이지만 이렇게 보이는 건 어머니의 선물이라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어느 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시간이 오겠죠
그런 날이 온다면 운명처럼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으로 저의 삶을 더 많이 웃으며, 더 많이 행복해지겠습니다
어머니!
제 마음속에서 봄바람이 살랑거립니다
건강한 마음이 최고의 선물인 것처럼 오늘도 우주의 행복을 담아 해님의 붉은 사랑을 듬뿍 담아서 저의 칼국수를 끓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