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에 과민하게 반응하는가
어떤 조직이든 이 질문은 반복된다.
“이 사람, 우리랑 잘 맞을까?”
그런데 ‘잘 맞는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스펙도 성향도 아닌, 무의식 속 반응 패턴이 그 해답일 수 있다.
컬쳐핏이란 결국,
누가 당신의 버튼을 누를 때,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모두에게는 발작버튼이 있다. 이 버튼은 단순한 예민함이 아니다.
내 자존감, 존재감, 핵심 가치와 연결된 무의식의 민감점이다.
이 버튼이 눌리는 순간, 이성은 날아간다. 평소의 태도, 말투, 사고방식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두려운 건 자신도 그런 버튼이 있다는 걸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면접을 보다보면 자주 접하는 발작버튼은 '강자/약자 프레임'이다.
상사, 리더, 권위적인 인물을 보는 순간 자동으로 "약자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이 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포지셔닝하고, 상대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왜곡해 해석한다.
이 프레임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트라우마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사람마다 다양한 원인과 경험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서운 이유는 '자기충족 예언'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갈등을 유발하고, 다시 '역시 강자는 약자를 무시한다'는 신념을 강화하며, 평생 같은 관계 패턴을 반복한다.
그런데 발작버튼이 항상 저주만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발작버튼을 창의적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는다.
권위에 예민한 사람이 변혁적 리더가 되고, 실패에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 완벽주의적 전문가가 되기도 한다.
발작버튼은 양날의 검이다.
그것을 인지하고 다루는 방식이 그 사람의 성장 가능성을 결정한다.
면접관은 종종 당신의 반응을 살핀다.
말의 앞뒤를 물고 늘어지고, 감정선을 흔들어 본다. 그 순간의 반응으로 이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모순을 지적했을 때 방어적으로 변하거나 순간적으로 굳는 지원자라면, 그 버튼이 눌린 것이다.
반면, 자신의 버튼을 인지한 지원자는 다르다.
물론 완벽하게 버튼을 제어하진 못해도, 그 버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차이가 생긴다.
같은 발작버튼을 가진 사람들도 그에 대한 반응은 다르다.
어떤 이는 침묵하고, 어떤 이는 반발하고, 또 다른 이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든다.
중요한 건 '어떤 반응이 좋은가'가 아니다. 그 반응이 당신이 가려는 조직과 맞는가? 이게 컬쳐핏이다.
격렬한 토론이 일상적인 회사라면?
그런 환경에서 위축되는 사람은 계속해서 발작버튼이 눌리는 고통을 겪게 된다.
반대로 직접적 충돌을 선호하는 사람이 위계질서가 강한 회사에 들어간다면?
끊임없이 벽에 부딪힐 것이다.
컬쳐핏은 결국 '좋은 사람' 찾기가 아니라,
'자기 발작버튼을 알고, 그에 대한 대응 방식이 우리 조직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람' 찾기다.
다음 면접에 들어가기 전에 자문해보라.
당신의 발작버튼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눌렸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 반응이 지원하는 회사에서 독이 될까, 약이 될까?
면접관의 질문 뒤에 숨은 의도를 알면, 당신도 이제 그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다.
발작버튼은 꼭꼭 숨겨야하는 대상이 아니다.
인정하고 다루는 사람만이, 자신을 소모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조직을 찾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