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백성은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타이밍'이라는 시간
“팔꿈치가 아픈데 혹시 아는 병원 있나요. 형님!”
오랜 노동으로 아픈 부위가 한두 군데 아니다. 팔꿈치가 아파서 물으니 남목에 있는 정형외과에 가보라고 한다.
“나는 다른 병원에서 목디스크라 하더라. 혹시나 해서 병원에 가니 아니라더라. 환자하고 의사하고 교감이 되면 치료가 빠른데 금방 나았다. 낫지 않으면 다른 병원에도 한번 가봐라!”
차를 주차하고 병원으로 걸었다. 흔히 말하는 ‘요지’라는, 사거리 도로 상가 빈 점포 ‘임대’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버스 타고 지나갈 때 무심히 그냥 지나쳤는데, 너무 놀랐다. 울산 동구 지역의 번화가 중 한 곳이라는 것이 무색했다.
“하느님 아버지, 저를 가엽게 여기신다면 제발 저희 아버지 좀 죽여주세요. 저희 아버지 시체를 제 눈앞에서 보게 해주세요. 제발, 제발”
이 끔찍한 절규는 실제 상황이 아니다.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의 여자 주인공이 불법 사채업자에 의해 삶이 파괴된 내용이다.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사망해야 상속 포기를 통해 빚을 떠안지 않게 된다는 걸 알고 기도하는 장면이다.
영화라고 하지만, 빚에 몰린 사람의 절규는 대한민국 실제 상황이다. 뉴스를 보면 빚과 관련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23년 대한민국 현주소는 인구 5,138만 명, 가계부채 1,862조 원, 1인당 약 3,700만 원, 4인 가구 1억 4,800만 원이다. 한국은행이 가계대출 원리금 부담 때문에 생계를 이어가기 힘든 사람이 2023년 7월, 300만 명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자료를 내놓았다. 이 중 175만 명은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보다 많아 사실상 파산 상태였다. 한은이 가계대출을 받은 1,977만 명의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DSR)을 분석한 것으로, 이 비율 70% 이상이 299만 명, 100% 이상이 175만 명에 달했다. DSR이 70% 이상이면 최저 생계비를 뺀 나머지 소득을 모두 빚 갚는 데 쓴다는 뜻이다. DSR 100%는 모든 소득을 빚 갚는 데 써야 한다는 의미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고 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은 실제보다도 더 현실 같다. 빚 공포에 시달리던 여자 주인공은 끝내 사람을 죽이고 지옥을 향해 달려가는 『화차』 불 수레에 올라탄다. 감옥이 아닌 지옥을 택한 것이다.
“아아, 나는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 빚을 면하고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다면 몇 해라도 좋다.”
러시아의 대문호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라는 소설을 쓴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40대 중반 산더미 같은 빚을 지고 있었다. 정신적 지주였던 형이 세상을 떠나자 막대한 부채와 가족 부양의 짐이 그의 앞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고리대금업자의 빚 독촉이 저승사자가 하루하루 찾는 것 같은 그는 지옥과도 같았다. 견디다 못한 그는 감옥 대신 외국으로 도피를 택한다.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의 90%는 돈 문제라는 말이 있다. 돈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한비자는 백성들 의식주가 부족하면 형벌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백성의 수는 많아지고 재화는 부족해졌다. 고되게 일해도 먹고 살아가기 힘드니 백성들은 서로 다툰다. 그래서 상을 배로 주고, 벌을 아무리 무겁게 내려도 혼란을 막을 수는 없다.”
‘오두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굶주린 백성은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굶어 죽으나 맞아 죽으나 마찬가지다!”라는 속담도 있다.
『사기』 화식열전에 인용한 말이다.
“예절은 여유가 있으면 생기고, 없으면 사라진다. 못이 깊어야 물고기가 생기고, 산이 깊어야 짐승이 다닌다. 사람은 부유해야 인의가 따른다.”
한 마디로 배가 부른 뒤에야 예절도 알고 법도 지킨다는 것이다. 군주의 고민은 그래서 더 깊어져야 하는 것이다. 형벌이 통하지 않고 법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는 몇 배로 현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외쳤던 지도자의 말이 생각나는 추석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