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가 굴뚝 청소했다. 한 아이는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어느 아이가 얼굴을 씻을까?”
한 학생이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씻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는 더러운 아이를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을 할 것이고,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아이를 보고 자기는 깨끗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조세희 작가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맨 첫머리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상대방의 얼굴을 거울삼아 자기 얼굴을 들여다본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은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얼굴로 자신 얼굴을 보지 못한다.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그림에서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을 그린 화가들이 많다.
그중 벨라스케스의 『비너스의 단장』 그림에서는 미의 여신인 비너스가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 거울 속에 있는 자신 모습에 도취 되어 바라보고 있다.
벨라스케스의 대작 『시녀들』에서도 거울 속에 인물이 두 명 등장한다. 뒷벽에 걸려 있는 거울을 보면 펠리페 4세와 왕비가 보인다. 벨라스케스는 왕과 왕비를 그리는 것이고, 공주와 시녀들은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마르가리타 공주를 그리고 있는 왕과 왕비가 그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일까?
얀 반 에이크의 그림 『아르놀피니의 결혼』은 세계 최초로 유화를 쓴 그림으로 유명하다. 여기서도 거울이 등장한다. 이탈리아의 거상 아르놀피니와 신부 조반니 체나미의 결혼 서약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에 다양한 상징들이 숨어 있지만 여기서는 신랑과 신부의 가운데 걸려 있는 볼록거울을 보면, 그림에 등장하지 않는 제3, 4의 인물이 보인다. 당 시대는 결혼하려면 결혼 서약 증인이 두 사람 있어야 했다. 증인이 두 명인 것을 증명하면서 거울 위에 글귀에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얀 반 에이크가 1434년 여기에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러시아 상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 그림을 보았다. 화집에서 본 기억이 있어 눈길을 돌릴 만큼 외설스럽지 않나? 라는 생각으로 지나치는데, 도슨트가 그림에 숨은 사연을 설명하였다.
역모죄로 몰려 굶겨 죽이는 형벌에 처한 아버지를 만나러 간 딸이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몰래 아버지에게 젖을 먹여 연명시켰고, 그 사연을 들은 왕은 딸의 효심에 감복해 아버지를 풀어주었다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가장 고귀한 사례로 여겨지는 이 그림의 주제에 대해 사람들은 ‘카리타스 로마나(Caritas Romana)’, 즉 ‘로마인의 자비’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유리창으로 보는 사람과 거울로 보는 사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유리창으로 보는 사람은 모든 일이 남의 이야기로 비춰지는 반면, 거울로 보는 사람은 모든 일이 나의 이야기로 다가온다고 한다. 둘 다 굴뚝 청소를 했지만 한 아이는 상대의 얼굴을 구경하는데 반해, 한 아이는 자신 얼굴을 씻는 것과 같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과거는 돌아갈 수 없지만 돌아볼 수는 있다고 했다. 돌아보는 것은 오늘을 알고 내일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공간 속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나는 깨달은 것이다.
▶ 디에고 벨라스케스 『비너스의 단장』 다음 인용
▶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다음 인용
▶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의 결혼』 다음 인용
▶ 루벤스 『시몬과 페로』 로마인의 자비, 러시아 상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 다음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