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찿아 북녘 땅으로넘어가다
나는 두 발로 서는 게 이제 가장 자연스러웠다.
손가락으로는 나뭇가지를 꺾어 지팡이처럼 짚고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털은 대부분 빠져 매끈해진 피부를 보니, 정말 '사람'의 모습에 한 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마늘을 먹으며 내 몸이 변하는 걸 가장 기뻐할 사람은 바로 북녘땅에 계실 우리 어머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옛적, 내가 아기 곰이었을 때 어머님은 항상 나에게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환웅 이야기,
곰과 호랑이 이야기...
어머님은
"언젠가 우리도 '사람'이 될수 있다면 더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종종 던지시곤 하셨다.
하지만, 옛 전설속의 연어 맛을 그리워한 어머님은 북녘땅으로 가시고,
나는 이 숲에 남겨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소망은 하나였다.
사람이 되어서 꼭 어머님을 다시 만나는 것.
그리고 지금, 드디어 그 소망이 이루어질 날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았다.
'어머님! 제가 드디어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요! 이 모습을 보여드리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가슴이 벅차올랐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숲을 떠나 북녘땅으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숲속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왠지 모를 불안감을 뒤로한 채 나는 북쪽으로, 또 북쪽으로 걸었다.
며칠 밤낮을 걸었을까.
숲은 점점 낯선 풍경으로 바뀌었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멀리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두 발로 서서 걸으며 최대한 사람처럼 보이려 애썼다.
혹시라도 곰으로 오해받아 잡히면 어머님을 만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북녘땅은 남쪽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고, 곳곳에 군복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철조망과 검문소가 늘어선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이동하던 중, 인기척을 느낀 군인들이 나를 발견했다.
"거기 서! 너 뭐 하는 놈이야!"
나는 얼어붙었다.
그들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총구 앞에서 변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결국 나는 북한 인민군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낯선 건물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차가운 시멘트 복도를 지나 작은 방에 갇혔다.
취조실 같았다.
매캐한 담배 냄새와 알 수 없는 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잠시 후,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아아악! 제발 살려주시라요!"
"제발... 제발 그만..."
"크윽...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비명 소리, 울음소리, 그리고 뭔가로 후려치는 둔탁한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고문받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는 공포, 절망, 그리고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고통이 담겨 있었다.
그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늘을 먹으며 얻었던 '사람'의 감각들이 이 고통스러운 소리에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분노, 슬픔,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야만적인 충동이 내 안에서 끓어올랐다.
마늘의 기운이 내 몸을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 마늘 속에는 '웅녀'가 품었던 '인내'의 기운만 있는 게 아니라,
곰 본연의 '흉포함'을 끌어내는 무언가도 함께 있었던 걸까.
아니면... 저 비명 소리가, 인간 세상의 어둠이 내 안의 곰을 일깨운 걸까.
비명 소리가 커질수록, 내 몸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다시 두꺼워지고 털이 솟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매끈해졌던 얼굴 근육이 꿈틀거리고, 턱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눈앞이 핏빛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이놈들... 감히... 감히 인간을... 저렇게 고통스럽게 하다니...!'
분노가 이성을 집어삼켰다.
'사람'이 되려 했던 소망은 잠시 잊혀졌다.
내 안에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이 끔찍한 고통을 멈추고 저들을 벌하겠다는 본능뿐이었다.
"크아아아악!!!"
참았던 포효가 터져 나왔다.
이미 내 몸은 절반 이상 곰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두 발로 일어선 나는 문짝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나무 문이 산산조각 나고 나는 밖으로 튀어나갔다.
복도에 있던 군인들이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더 이상 어설픈 '사람'이 아니었다.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과 솟아난 털,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반인반웅(半人半熊)의 괴물이었다.
"저... 저게 뭐야! 곰... 곰인가!"
군인들이 총을 들이댔지만,
이미 야성의 힘이 폭발한 나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맹렬하게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둔탁한 소리, 비명, 그리고 쓰러지는 군인들.
마늘로 얻은 괴력과 곰의 흉포함이 합쳐져 그 어떤 무기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취조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고문당하던 사람들을 구해냈다.
그리고 감방 문들을 부수며 갇혀 있던 사람들도 풀어주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나를 보고 겁에 질렸지만,
나를 따라온 고문 피해자들의 말과 내 눈빛 속에서 두려움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읽었는지 조심스럽게 나를 따랐다.
"빨리! 남쪽으로 가야 합니다!"
누군가 외쳤다.
우리는 어둠 속을 뚫고 북녘땅의 감옥을 빠져나왔다.
군인들이 뒤쫓아왔지만, 나는 맨 앞에서 길을 열고, 때로는 뒤쫓는 적들을 막아내며 사람들을 이끌었다.
다시 숲길을 헤치고, 강을 건넜다. 모두가 지치고 두려웠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며칠 밤낮의 사투 끝에 멀리 남쪽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휴전선을 안전하게 넘었다는 안도감, 그리고 드디어 자유를 찾았다는 기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함께 탈출한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내 몸은 아직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고, 어머님을 만난다는 소망도 아직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사람'의 모습이 아닌 '곰'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구원했다.
마늘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든, 나는 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남쪽 땅으로 향할수록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밝은 조명이 커지고, 우리는 긴장감에 발걸음을 멈출수 밖에 없었다.
-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