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 복각본
윤동주 시인
이미지 출처- 네이버(뉴시스)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시인임에도 정작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옵니다. 윤동주 시인의 순국일도 인터넷과 관련책자를 통해서 이제야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비롯해서 주옥같은 작품들이 뇌리와 입속에서 맴돌고 있네요.
<서시> 육필 원고(1942년)(이미지 출처- 다음 위키백과)
서시
윤동주
죽는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인터넷으로 윤동주 시인에 대해 검색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윤시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비롯해서
알려지지 않은 비화들 같은 것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서시>가 원래는 제목이 없는 무제 시였다는 것, 사진의 과묵한 이미지와 달리 여동생에게 짓궂은 장난을 즐겨했던 장난기 많은 성격도 지녔었다는 것, 그리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하기전 일제에 의해 이름 모를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은 후 절명하여 일제의 생체실험에 희생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 등 새로운 일화들을 접하면서 이외의 면모에 놀라고 한편으로 더욱 가슴 아리는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미국의 작곡가 제임스 브랜드가 작곡한 흑인영가인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흑인노예가 고향 버지니아를 그리워하는 심경을 그린 곡으로, 당시 시인이 처한 상황도 이와 다를 바 없었기에 절절하게 다가오는 듯 합니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오곡백화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달새 높이 떠 지저귀는 곳,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상전 위하여 땀흘려 가며
그 누른 곡식을 거둬 들였네
내 어릴 때 놀던 내 고향보다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이 몸이 다 늙어 떠나기까지
그 호숫가에서 놀게하여주
거기서 내 몸을 마치리로다
마사와 미사는 어디로 갔나
찬란한 동산에 먼저 가셨나
자유와 기쁨이 충만한 곳에
나 어서 가서 쉬 만나리로다'
해방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이역의 차디찬 감방에서 꿈에 그리던 조국의 봄을 보지 못하고 2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시인.
조국을 그리워하며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를 불렀을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역만리 차가운 감방의 철창사이로 조국의 봄을 그리며 짧은 생을 살다간 윤동주 시인을 비롯하여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하신 독립운동가 분들을 기억하며 지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