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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와 수필

12월의 사랑 노래

[수필]

by 오현진

2024년의 12월은 너무나 힘든 계절이었다.

느닷없는 계엄으로 인해 가슴을 쓸어내리고, 탄핵정국으로 이어진 어수선한 시기에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하여 또 한 번 전 국민의 가슴에 멍이 들었다.

탄핵 가결이 이루어진 즈음, 제주도는 한창 귤 수확시기라

우리 집도 귤 따기에 온 가족이 매달렸고 나도 귤 따는 것을 도왔다.

귤 수확이 끝난 후, 한숨 돌리던 차에 수능을 마친 조카가 제주도에 내려왔다.

수원에 사는 남동생의 장남인 조카는 처음으로 혼자 제주도에 내려와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며칠을 지내다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수원으로 올라갔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어머니와 함께 동네 병원에 가서 독감 예방접종을 하고 건강 검진을 받았다. 독감 예방접종과 건강검진을 한꺼번에 다 하다 보니 기운도 빠지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성탄절을 보낼 수 있으리라 여기며 나름 설레고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감기기운이 있다고 하시더니 편찮으셔서 입맛도 잃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다. 낮에는 컨디션이 괜찮다가 저녁엔 안좋아지시는 증세가 며칠간 이어져서 계속 걱정이 되었다.

성탄절도 기분이 나지 않고 우울하기만 했다.

원래 크리스마스에 진심인지라 설레는 마음으로 성탄절을 준비하고 트리도 정성스레 만들었지만, 그토록 기다렸던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우울하게 보냈다.

그나마 오후 늦게 카페에 가서 따뜻한 뱅쇼를 마시며 캐럴을 들은 것으로 위안이 되었다.




나흘 후 토요일에 위내시경 검사를 받고 건강검진이 마무리되었다. 건강검진도

다 끝났으니 남은 연말을 잘 마무리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일요일 가톨릭 평화방송으로 주일미사를 보는 도중 청천벽력 같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소식을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분들과 유족들을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2024년 대한민국의 12월은 왜 이토록 가혹하리만치 아프고 힘든 것일까.






한강 작가가 부른 '12월 이야기'라는 노래를 들으며 가사가 너무 마음에 와닿아 바로 외우고 따라 불렀다.


12월 이야기

한강, 이지성


눈물도 얼어붙네 너의 뺨에 살얼음이

내 손으로 녹여서 따스하게 해 줄게

내 손으로 녹여서 강물 되게 해 줄게

눈물도 얼어붙는 12월의 사랑 노래.


서늘한 눈꽃송이 내 이마에 내려앉네

얼마나 더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얼마나 더 먼 길을 헤매어야 하는지

서늘한 손길처럼 내 이마에 눈꽃송이


모든 것이 사라져도 흘러가고 흩어져도

내 가슴에 남은 건 따스했던 기억들

내 가슴에 남은 건 따스했던 순간들

모든 것이 흩어져도 가슴속에 남은 노래


모든 것이 흩어져도 가슴속에 남은 노래



2024년의 12월은 대한민국에는 참으로 잔인한 계절이었다.

노래가사처럼 '눈물도 얼어붙는' 시리도록 슬프고 가슴 아픈 계절이었다.

그럼에도 따스한 '사랑노래'로 위로를 전하며 희망의 빛이 흐르는 12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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