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돈키호테는 풍차가 악당 거인이 팔을 휘두르는 거라고 착각해 공격하고, 포도주가 든 가죽부대를 상대로 격투를 한다.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나는 돈키호테는 정의의 기사가 아닌 과대망상에 빠져 앞 뒤 안 가리고 덤비는 막무가내 전형처럼 보였다. 소설을 읽을때 개별 에피소드들이 모아져 있어서 큰 줄거리를 알기가 어려웠고, 많이 들어봤던 작품이라 문학사적인 의미가 있을까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읽는 중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중에 책의 배경을 살펴보니 17세기에 돈키호테를 읽은 사람들은 그저 웃고 마는 가벼운 소설로 여겼다고 한다. 18세기에 감각과 감성보단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중시하는 태도의 합리주의자들은 돈키호테로 바보로 보았다. 그러나 계몽주의에 반대하는 낭만주의자들은 세계와 싸우는 이상주의자라며 돈키호테를 칭송했다고 한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시기 19세기에는 (어린아이들도 굴뚝청소부로 일하다가 굴뚝에 끼어 죽던 시절) 노동자들은 돈키호테가 몰락한 귀족이라고 비꼬았다고 한다.
19세기 영국의 어떤 어린 굴뚝 청소부. 출처=https://blog.daum.net/johnkchung/6825579
어떤 작품이든 그것을 읽는 사람들의 생각과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 재밌었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돈키호테 소설은 어떤 물음을 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요즘 풍부한 학식을 가지고 있어도 정의와 진리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고 느낀다. 한국을 대상으로 '우리 사회는 정의로운가?'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지금의 사회는 불의가 만연하다고 느끼며 정의롭지 못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현대인들은 모험보단 허황된 꿈을 버리고 현실에 맞춰 사는 것을 선택하고, 자신의 가치와 이상을 실현하는 돈키호테를 무모하다고 바라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현재에 머무르고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도 들었다. 책 속 돈키호테는 매일같이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도전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그의 신념을 놀림감으로 삼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그걸 보면서 누군가는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느꼈고,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신념을 함부로 평가절하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