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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묻는 질문 앞에서

지금의 나이를 살아가는 법

by 온수ONSU

나이를 하나씩 더 먹어갈수록,
이상하게도 나이를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늘어난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말하는 게 즐거웠다.
스물세 살.
유명한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비즈니스 트립을 오가며
1년에 다섯 번쯤은 여행을 다니는 삶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분명히 잘 나가고 있었다.

그때가 정점이었고,
솔직히 말하면 그 상태가 계속될 거라고 믿었다.
그때 했던 다양한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거라고,
삶도 커리어도 끊기지 않고 계속 확장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집과 가끔 있는 서울 미팅을 오가고

오후에는 식당으로 파트타임을 하러 가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은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말하기 싫은 건 아니지만,

예전보다 조금 움츠러든 기분이 든다.


스물세 살 때보다 나이가 들었으면

사람들에게 더 인정받고 있어야 할 것 같고,
남들이 보기에 좀 더 멋있어야 할 것 같은데
실상은 반복적인 작업을 묵묵히 해나갈 뿐이다.

남들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정감을 느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에서는
내가 조금 뒤처진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런데 또 이상하게,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을 때는
이 모든 상황이 오히려 엄청난 행운이자 기회처럼 느껴진다.

식당에서 일을 하다 보면
사장님께 꾸중을 들을 때도 있고,
손님들에게 컴플레인을 받을 때도 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로 집에 돌아와
작업을 시작하는 순간,
나는 다시 생각을 고쳐먹게 된다.

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겸손해진다.


특히 서비스직처럼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일을 하다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과 노동의 가치에 대해
존중과 감사의 마음이 생긴다.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감정 위에 놓여 있는지

몸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경험들이
미래를 잇는 하나의 점이 되어
지금 내가 가는 방향을 조용히 이어준다.


나는 내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꼭 작품 안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알바하면서 보낸 시간도,

식사를 요리하는 시간도

가족들이랑 소소하게 대화를 하면서 하루를 공유하고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꼈던 순간들까지

이런 작업 밖의 일상들과 비주류의 시간들이 나의 자양분이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는 나이를 묻는 질문 앞에서도

지금보다 조금 더 떳떳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지금의 나는

화려했던 시절과는 다른 모습일지 모르지만,

그때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있다.


언젠가는 누가 나이를 물어봐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얼굴로,

괜히 움츠러들지 않는 태도로

그 숫자를 말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지금의 시간을 성실하게 살아가자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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