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한 이단자의 사유

나만의 진리를 만드는 과정

by 온수ONSU

불안이 일상을 잠식하고 반복되는 삶에 회의가 들 때면, 나는 무작정 예술을 찾는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전시장을 배회한다. 하지만 때로는 이 모든 행위가 밑 빠진 둑에 물을 붓는 것처럼 허망하다. 예술이 내게 온전히 흡수되지 못한 채, 그저 '소비했다'는 얄팍한 안도감만 남기 때문이다.

그 허무함을 이기기 위해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타인의 사유를 이해하고 내 것으로 체화했음을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어서다. 그러나 증명이 끝난 자리에는 이내 다시 허무가 찾아온다. 왜 나는 끊임없이 입증하며 살아야 할까. 그저 사색하고 사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걸까. 내 생각을 온전히 공감받고 싶다는 갈증은 어느덧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로 번져간다.


예술을 소비하는 행위는 내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다.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처럼, 나는 끊임없이 나의 편협한 시야를 의심하고 두드린다. 이런 습관은 나를 깊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날 선 예민함이 되어 고립감에 나를 찌르기도 한다.


내가 동경하는 예술가들은 세상을 단순하게 보지 않는다. 그들은 세포가 얽히고설킨 것처럼 복잡하고 미세한 균열까지 포착해내고 복잡한 존재의 층위를 읽어낸다. 그 사소함 속에서 명확한 메시지를 건져 올려 타인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들의 집요함을 나는 존경한다. 자신이 발견한 가치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고, 그것이 타인에게 정당하다고 공감받는 일. 이 창조적인 과정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 믿는다.


물론 이 길은 외롭다. 사회가 정한 보편적인 가치를 무작정 따르지 않는 삶은 늘 혹독한 대가를 요구한다. "남들 다 하는 걸 왜 너만 피하려 하느냐"는 서늘한 질책을 들을 때면, 내가 선택한 가치가 고작 무능함의 변명이나 겁쟁이의 회피처럼 느껴져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 견고한 세상의 눈에, 나는 질서에 복종하지 않는 부적응자이자 나약한 이단자일 뿐이다. 때로는 그들의 멸시 섞인 시선 속에서 내가 정말로 도태되고 있다는 공포에 짓눌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공포가 나를 다시 예술로 이끈다. 나는 사회가 규정한 정답에 안주하며 나를 잃어버리는 삶을 거부한다. 스스로 가치를 발견하고 나만의 진리를 세우는 것, 그것이 비록 세상의 기준과는 동떨어진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 진리는 타인의 잣대가 아닌, 내가 보낸 인고의 시간과 치열한 관찰을 통해 해석된 내 세계의 감정 속에서 태어난다.


나는 예술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가치를 만들고 진리를 세우는 과정, 그 고통스러운 창조의 반복이야말로 인간이 태어난 본연의 목적이자 가장 인간다운 삶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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