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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버그, 버그 러브!

일상의 묘미

by 제이로사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거실로 나가 베란다 문을 연다. 베란다에 면한 통창을 열어 밤사이 가라앉은 쿱쿱한 공기를 내보내는 나의 아침 루틴이다. 내보낸 만큼, 또 새로운 공기가 실내를 채운다. 통창문 밖에서 밤새 대기하고 있던 녀석들은 문을 열자마자 마치 제집마냥 들이닥친다. 밖에서 묻혀 온 온갖 세상의 냄새가 내 집구석구석에 섞여 들고 나면, 이제 그 녀석들의 집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아침마다 새로운 녀석들이 묻혀 온 바깥 냄새를 맡으며 나는 세상과 소통을 시작해 왔다.


통창문을 열어 놓는 시간만 다를 뿐,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타지 않는다. 황사와 폭우가 쏟아지는 날은 안타깝지만 빠진다. 환경과 자연에 묶여 사는 인간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아쉬움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아침 베란다 문을 열고 움찔, 충격에 빠졌다.


베란다로 나가자마자 까만 벌레들 수십 마리가 파들파들 날아다니고 있었다. 바닥에도 사체가 잔뜩이었다. 자세히 보니, 몇 년 전부터 여름 초엽이 되면 거리를 뒤덮는 붉은등우단털파리, 러브버그였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당장 전기모기채를 찾아들었다. 잠 덜 깬 눈을 비비며 모기채를 휘둘러 댔다. 타탁 타다닷 장작불 피울 때 나는 소리가 토톡 토도돗 작게 오랫동안 이어졌다. 동시에 동물성 지방 타는 냄새가 짧고 강렬하게 코끝을 스치며 사라지길 반복했다. 어느새 베란다 바닥은 까만 파편들로 채워졌다. 물 폭탄이 필요할 때다. 나는 미뤄오던 베란다 물청소를 시작했다. 아침 7시에.



징그럽고 뭐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러브버그라는 이질적인 벌레의 잔해를 단 하나도 남길 수가 없었다. 나는 오랜만에 가족을 벌레로부터 지키는 전사가 되어 베란다에 붙어 있던 러브버그들을 박멸했다.

청소를 마친 후 창문을 살폈다. 어젯밤, 아주 조금 덜 닫힌 문틈으로 러브버그가 들어온 것 같았다. 방충망 바깥으로는 여전히 러브버그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우리 집은 20층인데, 그 높은 곳까지 올라온 그들이 한편으론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오늘은 또 다른 자연발생적 사정으로, 통창문 여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장렬한 아침 전쟁을 마치고, 인터넷을 켜서 러브버그를 검색해 보았다. 러브버그는 익충으로, 사람을 물거나 병을 옮기지 않으며, 유기물 분해와 진드기 퇴치 등 생태계에 도움이 된다고 나왔다. 하지만 혐오감을 유발해 ‘생활불쾌곤충’이기도 하다고.


그렇다. 혐오감과 생활 불쾌감.


러브버그가 비록 익충이기는 하나, 내가 사는 공간에서 공생할 수 없는 이유였다. 왜 러브버그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자세히 보면 이들은 짝짓기 동안 두 마리가 온종일 붙어서 날아다닌다. 거리, 창문, 사람에게 거칠 것 없이 들이댄다. 그래서 얻어진 별명이다. 수컷은 35일, 암컷은 7일 동안 살면서, 종족 번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니 그들의 사랑은 죄가 아닐까.


러브버그_4.jpg


버그는 벌레와 컴퓨터 오류 및 오작동 등의 의미가 있다. 곤충과 벌레.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아주 단순하게 징그럽지 않으면 곤충, 징그러우면 벌레라고 인식한다. 실제로는 벌레에 곤충도 포함되고, 익충과 해충도 존재하는데 말이다. 벌레는 주로 분해로, 곤충은 주로 매개체로 생태계를 살리는 아주 중요한 존재들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일상생활에서 벌레는 부정적 의미로 자주 쓰인다. 특히 오늘 아침 같은 상황에서는 부정적 선입견에 감정까지 실린다.


앗, 잠깐만 …. 그 기사들 아래에 인간들의 사건이 보였다.


<접근 금지 끝나자 아내 살해한 60대… "난 잘했다고 여겨">

가정폭력으로 아내에게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 연락 제한 조치명령을 받은 60대 남성이 접근 금지 명령이 종료되고 7일 만에 아내를 살해했다. 그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했다. (세계일보, 요약)


<‘지하철 5호선 방화범’ 구속심사 출석…“이혼소송 알리려 범행”>

지하철 5호선에서 휘발유를 뿌려 방화한 60대 남성은 이혼소송에서 패소했고, 사회적 관심을 받기 위해서 방화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때 지하철에는 4백여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조선비즈, 요약)



다시 등줄기를 훑는 혐오감과 불쾌감. 러브버그에 이어 러브를 핑계로 한 살인과 폭력. 러브라는 단어가 갑자기 무서워졌다. 러브는 타인을 배려하고, 살리며,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버그 난 러브는 타인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하다.


버그 난 러브. 인간계의 러브버그들.


러브버그나 버그 난 러버들이나 공통의 문제는 자신들에게만 열중해 타인에게 불쾌감과 피해를 주는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가 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듯이. 아무리 러브버그가 익충이라 하더라도, 인간들을 괴롭히는 한, 안하무인격 창궐함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인내심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버그 난 러버들은 러브버그만도 못한 어리석은 존재들이니 오죽할까.



눈치 없는 곤충계의 러브버그들에게 바란다. 나 같은 아줌마 손에 당한 몰살을 유전자에 기록해서, 내년부터는 부디 우리에게 달려들지 말기를.

인간계의 버그 난 러버들에게 바란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러브버그를 만난 아침의 상념이 참 길었던 하루였다. 내일부터는 식초에 물을 타서 방충망에 뿌리고, 새로운 세상 냄새를 가져올 녀석들을 다시 맞이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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