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의 묘미
살짝 차가운 듯한 물속에 온몸이 잠긴다. 800톤 정도 되는 물의 압박이 피부를 뚫고 심장에 닿았다. 잔뜩 긴장한 심장이 화들짝해선 벌써 조금씩 파닥거리기 시작한다. 가만히 수면에 손바닥을 대보았다. 단단했다. 손바닥으로 물 표면을 살짝 쳐본다. 마치 잘 쑨 묵처럼 묵직하고 탱탱하며 부드럽게 출렁거렸다. 온몸을 던져 물속으로 들어간다. 물이 밀도 높게 내 몸을 조여 왔다. 곁에 수영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나를 둘러싼 물속 세상은 고요하다. 나와 물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물이 나를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 나는 거칠게 물살을 끌어당겼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 좌우로 몸을 돌렸다. 숨을 쉬기 위해.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면 좀더 느긋하게 수영을 즐길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사람들은 인어를 상상해 냈을까. 감정 없이 담담한 물의 품속인데, 인정받으려는 듯 경망스럽게 파닥거리는 내 몸이 안쓰럽다.
직장을 다니면서는 직업인으로서 주어진 업무를 잘 해내는 것이 매일을 살아내는 작은 보람과 삶의 동력이었다. 그렇다고 그 삶이 충분히 보람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대부분 직장인이 느끼는 월급 받는 딱 그 정도였다. 다음 달에 소소한 나의 욕망, 예를 들자면 신상 샌들을 사고, 한 번쯤은 친구들한테 비싼 요리를 쏠 수 있는, 눈치 안 보고 기분을 낼 수 있는 정도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 권태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것인지 성찰해야 하는 숙제는 계속 미루면서, 월급만큼 얄팍한 동력에 의지한 더께 같은 관성의 힘이 고작이었다.
나는 작년에 직장을 잃었다. 덕분에 일단의 시간이 생겼으나, 아직 나를 돌아볼 충분한 시간도 부족했다. ‘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란 삶의 추동체도 찾지 못했다. 우선 실직 후 게으름에 뭉개졌던 몸과 불규칙한 일상으로 잃어버린 나의 건강을 찾는 것이 가장 급한 생존 목표였다. 수영은 무너진 건강으로 일상의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나에게 일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미지의 선택지 중 하나였다.
다행히 출근하듯이 9시 수영을 만났다. 나는 수영을 통해 건강과 일상 회복에 대한 갈급을 채웠다. 피부의 모든 구멍을 통해 쪽쪽 빨아들이고 있었다. 수영 덕분에 일찍 일어나고, 반드시 아침을 먹으며, 식욕도 찾았다. 다음 날 아침 수영을 위해 저녁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늦은 밤의 이벤트를 절제하고 포기하듯이, 아침 수영을 준비했다. 아침 시간의 루틴이 새롭게 자리 잡으면서 나의 생활도 점점 안정을 찾았다.
수영 후 조금 더 건강해진 몸은 점차 오후 시간의 에너지원이 되었다. 어떻게 아침을 맞이하고 보내는가가 하루의 나머지 20시간 정도를 좌우했다. 비로소 아침의 질은 나의 하루의 기본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점점 수영에 빠져들었다. 수영 초보인 내가 처음으로 느낀 수영의 물맛은 내 몸이 수면에 떠서 앞으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물을 무서워했다. 그런 내가 물에 떠서 앞으로 가다니. 죽음과 공포의 대상이 놀이의 대상이 된 것이다. 손에 잡으려면 산산이 부서지는 존재가 내 몸을 맡기면 단단하게 나를 받쳐주었다. 물살 사이를 가를 때 느껴지는 묵직한 저항감은 내 손끝에 새로운 도전 세포를 피웠다.
물에 떠서 앞으로 나가는 방법을 배우고 나면, 물살을 타고 넘어가는 영법을 배운다. 돌핀킥으로 유명한 접영을 잘하면 고래처럼 물살을 헤치고 물 위로 날아오른다. 버터플라이라는 이름도 가진 접영은 나비가 물 위를 날아가는 것처럼 아름답다. 나 같은 초보에게 물 위를 나는 것은 찰나이지만, 찰나여서 더욱 맛나고 짜릿하다. 수영의 또 다른 물맛이다. 수영의 물맛에는 성취감이 송골송골 맺힌다.
나는 그렇게 수영의 물맛에 빠져들어 갔다. 수영을 마치고 나면 수영 관련 유튜브를 보고, ‘운동은 장비발’이란 달콤한 욕망에 빠져 수영 장비 관련 쇼핑에 몰두했다. 냉장고에는 인어 자석이 붙었다. 수영장에서 만난 수영 동기들과 커피를 마시고, 수영 선배들의 경험담에 귀를 기울였다. 적당히 살도 빠져갔다. 수영이란 운동이 주는 좋은 점이 하나씩 일상에 새겨지고 있었다. 하루가 온통 수영, 수영이었다. 일단 마음먹고 시작하면 지겨울 때까지 푹 빠지고 마는 나다운 몰두였다. 수영의 맛은 다채로웠다.
난관이 왔다. 평영, 일명 개구리헤엄을 배울 때였다. 두 다리를 뒤로 접어 W자를 만들고 항아리 모양으로 뒤로 차라는데, 그 각도와 힘을 주는 포인트가 평상시에 거의 해보지 않은 자세였다. 나이가 들면 고관절 등 관절에 유연성이 떨어지는데 자칫 잘못된 평영 발차기는 허리와 관절 등에 무리를 준다.
함께 배운 청년들은 금방 개구리가 되어 물속을 유유히 헤엄쳐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부러움과 조급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의욕을 앞세워 욕심껏 연습했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실로 가는데 왼쪽 고관절 뒤쪽이 아파져 왔다. 허리도 무리가 되었는지 뭉근하게 힘이 빠지며 눕고 싶어졌다. 나도 모르게 잘못된 자세로 열심히만 한 것이다. 평영과 접영에서 포기하는 많은 수영 선배의 존재는 현실이었다. 자고로 투머치는 나쁘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처음 수영을 시작했을 때의 기본 마음을 다시 찾아들었다. 나의 몸에 집중하고, 기본자세를 잘 배우고, 나의 속도대로 나가자.
수영에 모든 일상을 올인하다 보니, 내 아침의 건강한 루틴은 만들어졌다. 문제는 내가 하루 종일 수영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일상에서 수영의 기본값은 좋아하는 운동의 하나일 뿐인데 전부처럼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오후의 루틴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란 걱정이 공식처럼 올라왔다. ‘뒤처지지 않으려면’이 아마도 생략된 이유였을 것이다.
에비에비, 내가 또 그럴 줄 알았다. 내 몸은 그동안 사회통념에 떠밀리듯이 살아왔던 시간의 씁쓸한 뒷맛에 아직도 얼얼하다. 워워~ 서두를 필요 없다. 수영 물맛 좀 더 느껴도 된다.
수영의 물맛은 일상이 무너진 내게, 삶의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알게 해 주었다. 수영의 희로애락을 통해 다시 일어서고, 내 몸이 살만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오늘도 중급라인 맨 꼬투리에서 수영의 기본자세를 익히기 위해 실컷 물을 먹고 왔다. 내 아침의 기본 루틴을 잘 지켜낸 것이다. 지금 나에게 수영의 물맛은 지켜야 할 아침의 기본 맛이자, 내 삶의 씨드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