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 그림

내 우울증은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생활글쓰기 시즌1-1)

by 박조건형



요즘의 나는 참 바빠 보인다. 어떤 분은 직장다니는 분 맞습니까? 하고 농담을 던진다. 직장 다니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만큼 그림 그리는 양도 많기 때문이다. 맞다. 요즘 하루하루가 너무 신이 난다.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자꾸 떠오르고 그것을 실현하기에도 너무 바쁜 하루하루이다. 어쩔수 없이 우선 순위를 매기게 되고, 어쩔수 없이 시간을 경영하고 있다. 내가 신이나고 재미있는 일 순서로 나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런 내가 나의 우울증의 시간을 자주 이야기 한다. 그것도 28년동안 우울증의 시간이 있었다고 말이다. 물론 지금은 우울증에서 자유로워진지 2년 6개월이 넘었다. 2년 6개월동안 우울증이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28년이나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우울증이 언제 내게 있었냐듯 싶게 요즘은 보이질 않는다. 이 징글징글한 녀석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정말 사라진 것일까? 그 2년 6개월의 시간동안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그에 대한 글을 하나 쓰기도 했다.(“29년의 우울증을 지나 2년 6개월의 긴 회복의 시간” 이라는 제목의 글이다.)앞으로 여섯번의 생활글쓰기 시즌1 모임 동안 28년의 우울증의 시간에 대한 글을 여섯편 쓸 생각이다.


나의 우울증의 출발은 언제일까. 내가 15살때 중학교 2학년일 때이다. 그때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가 대순진리회 종교에 열심히 다니던 때이고, 아버지 및 대순진리회 사람들이 집에 자주 나타나 집의 재산들을 하나하나 가져갈때이다. 그 당시의 우리 집의 분위기는 상당히 무거웠고, 그 무거운 분위기가 그당시 사춘기였던 내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아버지는 왜 대순진리회에 심취를 한 것일까. 아버지가 대순진리회에 다니지만 않았어도 나의 우울증은 없었을 것인가? 그건 알수 없다. 일단 그러면 그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났던 시간까지 다시 거슬러 올라가보자.


외향적인 아버지와 내향적인 어머니는 중매로 만나 몇번 만나지 않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두분은 두살차이였고, 아버지는 원향어선을 탔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그당시는 국민학교 라고 불렀다.)중매로 몇번 만나지 않은 사이이인데, 서로 큰 신뢰관계가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하신것 같다. 그나마 아버지가 원향어선을 타지 않았다면, 두분의 신뢰관계는 조금 생기지 않았을까. 신뢰관계가 생기기 전에 아버지는 결혼을하고 바로 원향어선을 타신 것 같고, 6개월정도 이상 배를 타다가 집에 들어와서 몇일 보내는 생활의 반복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두분이 친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아버지는 외향적인 분이다 보니 몇달만에 집에 들어오면 가족과 추억을 쌓기 위해 자꾸 바깥으로 나들이를 가자고 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내향적인 분인데 거기다 체력이 상당히 약했다. 한번 감기가 걸리면 한달이상 갔을 정도로 자주 아프고 쉽게 피로감을 느끼던 분이어서 교사생활이 그렇게 적성에 맞는 것도 아닌 거 같아서 퇴근하고 나면 집에서 쉬고 싶어하는 분이었다. 몇달에 한번 집에 들어왔는데, 가족과 보내는 방식에 있어서도 두분이 참 맞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당시에 대한 추억이 없다. 사진으로만 보고, 이야기를 들어 그당시를 기억할 뿐이다. 나의 과거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전에는 없다.


나는 외할머니 손에서 컸고, 옛날분이다보니 여동생보다는 나를 더 편애하며 키우셨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어쨓든 그점이 동생에겐 미안하다. 옛날분이다 보니 관계를 서로쌓고 감정을 주고 받고 대화를 주고 받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주는 무뚝뚝한 방식의 육아 스타일 이셨다. 엄마는 퇴근후 늘 피곤해 했고, 한번 감기라도 걸리면 오래갔고, 그러면 예민해서 조용히 혼자 쉬고 싶어하는 엄마였다. 아버지도 몇달에 한번 집에오는 사람이니 나에겐 아버지와 어머니와 보낸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이 없다. 그렇게 나는 어린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오래 타다가 내가 기억하기에 대략 내가 초등학교 5학년정도까지 배를 타신것 같다. 그리고, 배타는 일을 그만두고, 부산 서면에 탁구장을 차리누기억이 흐릿하게 있다. 아버지가 배타기를 그만두고 육지 생활을 하시다가 어떻게 대순진리회를 접하신지는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집에 대순진리회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자꾸 집안의 돈을 가져가려고 했다. 우리가 길바닥에 나앉을 뻔한걸 어머니가 겨우 지켜내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한 것이 내가 중학교 2학년인 것같다. 바로 나의 우울증이 시작된 그때이다. 이사하기 전에는 그래도 동네 아이들과 잘 어울려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 동네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고, 구슬치기도 하고 다른 놀이들을 하며 어울려 놀았다. 따르던 형들도 있어서 시험기간이면 그 형네 집에 가서 같이 공부도 하고 공부안하고 딴짓하고 놀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고 동네 친구들도 있던내가 중학교 2학년때 이사를 하고 나서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이사 전후로 달라졌는데, 이사한 그 집은 그 전 집에서 버스로 두코스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네로 다시 놀러갈 생각도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아버지나 대순진리회 사람들이 집에 오면 집안 분위기는 살얼음판이 된다. 엄마는 큰망에 들어가고 동생도 동생방으로 나는 내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혹은 문을 쾅 닫고 근처 만화방으로 숨어버렸다. 기껏 도망친 장소가 근처 만화방이었다니…그렇게 만화방에 자주 갔자만 내가 만화를 즐기었다기 보다 그냥 도피성이었던 같다. 만화를 즐겼다면 나는 만화광이 되었겠지만, 그게 아니었으니까. 외할머니는 근처 외삼촌 집으로 가버렸다. 뿔뿔히 흩어져 버렸다. 그러면 아버지는 거실에서 혼자 TV를 보거나 문을 닫고 들어간 엄마보고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나는 그당시 아버지가 참 싫었다. 하지만 그당시 나에게 아버지는 큰 사람이어서 그런지 그런 싫다는 감정을 표현조차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감기로 아프면 집안의 다크함은 더 깊어졌다. 혼자 방에서 조용히 쉬고 싶어하셨기 때문에 상당히 예민해졌고, 우리는 그 엄마의 분위기에 맞춰 조심하고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의 “쯧쯧쯧” 하며 혀차는 소리가 나는 정말 싫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내방에만 숨었다. 내방에 누워 있거나 그 당시 자위를 알게 된 나는 방에서 자위를 하곤 했다. 그나마 학교에 갈때는 힘을 내서 갔지만, 그 힘냄이 방과후까지 이어지진 못했고, 집에오면 방에서 누워 있기만 하거나, 만화방으로 도피했다. 주말에도 그렇게 누워 있거나 만화방으로 도피했다. 방학때도 학교 수업이 없으면 집에서 그렇게 보냈다. 그러니까 방과후에 주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해본 경험이 없다.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가 없다. 항상 그렇게 우울증으로 숨어만 지냈으니까. 차라리 만화에 빠져 만화에라도 미쳤다면 나았겠지만, 나는 그 무엇에도 몰입한 경험이 없고, 취미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또래와 어울인 경험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그래도 힘을내서 공부도 하고 어느정도 어울리긴 했지만, 방과후에는 그냥 혼자 조용히 집으로만 갔다. 아마 학교에서 힘을 내서 지내느라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늘 애써서 에너지를 끌어 올려 학교 생활을 했던 것이다.


나는 주체적으로 공부를 한 경험이 없다. 문제집을 사서 끝까지 풀어낸 경험이 없다. 반에서 10등 내외의 성적을 유지했던건 학교에서 애써서 공부를 하며 버텼기 때문이다. 방과후에 나는 공부를 한 적이 없다. 늘 누워있고 잠으로 도피하고 자위하고 내방에만 쳐박혀 있었다.


엄마는 외할머니 손에서 외동으로 컸다.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1살정도때 보도연맹으로 돌아가셨다고 최근에서야 엄마에게 전해 들었다. 배운것 없는 외할머니 혼자 억척스럽게 엄마를 키워 엄마는 공부에만 집중해 교사가 되고 집안을 건사한 것이다. 아버지가 대순진리회에 몰입하는 와중에도 엄마는 경제적으로 지켜내신 그 점만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을 지킨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존경한다. 그러니 엄마도 관계맺는 법을 몰랐고 거기다가 내향적이었다. 친절한 말한디 할줄 몰랐던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늘 욕을 달고 살았고, 엄마는 모든 걸 혼자서 결정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자신의 아들이 방안에만 누워있는 것을 보고도 방을 열고 들여다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냥 속으로 자신처럼 아들도 알아서 잘 하겠지 막연하게 믿으며 모른체를 한 것이다. 엄마도 몸도 허약해서 교사일만으로도 몸에 부친데, 그놈의 남편마저 힘들게 하니 삶의 여유라는 것이 있을리 없었다. 엄마도 겨우 혼자 생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방문을 열고 내 방에 들어올 용기가 없었던 그 당시의 엄마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엄마는 한동안 그때 방문을 열고 말을 걸어주지 못했던 자신의 태도를 나에게 아주 많이 미안해 하셨다. 내가 엄마도 그때는 어쩔수 없었잖아요 라고 말해도 계속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동안 자주 하셨다.


그렇게 나의 중학교 2학년부터 고3까지의 시간은 나의 방안에서 고립된채 5년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갔지만 그 대학생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막막했을까. 관계맺는 법부터 친구랑 어울리고 무언가를 좋아하고 취미를 가지는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막막했던 그때의 시간이 너무 아프게 기억이 된다.


다음 글은 대학에 입학하고 사회생활이라는 망망대해의 바다를 어떻게 헤엄치며 생존했었는지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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