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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조건형 Aug 27. 2023

우울증이야기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가사 해석(29년우울증경험자의 생존 에세이 7)



원래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스스로 노래방에 가본적이 없을정도로 노래부르는 것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운전 납품하는 일을 하면서 라디오 듣는것에 취미가 생기고, 라디오에 사연도 보내고 내가 신청한 곡이 흘러나올때의 쾌감도 알고 상품도 받다보니 노래를 나도 모르게 흥엉거리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과거에 내가 올라가지 않던 키가 올라가는게 아닌가. 내 음역대가 그렇게 높은게 아니었는데,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대부분을 즐겨 따라부르는게 아닌가.


신기한 경험이었다. 우울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내가 평안해지고 온전한 나로써 괜찮아져서 나의 몸도 열려서 일어난 변화인 것일까. 아무튼, 그렇게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문득 노래를 한 곡 다 외워서 불러보고 싶었고, 영화 <라디오 스타>에 나오는 박중훈이 불렀던 “비와 당신”을 내 차안에서 부르는 것을 녹음해 SNS에 올렸다.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건 아니지만, 음치는 아니라는 확신이 있기에 문득사람들 앞에서 불러보고 싶어서 내 전시회 토크쇼 오프닝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SNS에 공개적으로 선언을 했다.


그리고 수백번은 연습을 했다. 수백번을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서 부르니 약간 떨렸고, 키 조절도 잘 못해서 마음에 들게 부르진 못했다. 그래도 완곡한 나 자신을 칭찬했다. 이번엔 다시 부산 2차 전시에서 다른 곡을 부르기로 했다. 내 키에 맞는 프랑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를 부르겠다고 SNS에 공언을 했다. 비와 당신 보다는 더 잘 부를 자신이 있었고, 당일 잘 불렀지만 첫번째 공연(?) 때보다 사람이 적게 오셔서 내 노래 솜씨를 더 뽐낼수 없었다는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첫번째 시도 보다는 아주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나의 29년 우울증경험은 내가 괜찮아졌다고 나에게만 묻어두기엔 너무 아까운 경험이라는 생각에 문득 연말에 이야기노래극 하나를 공연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의 29년 우울증이야기를 사람들앞에서 하되 내가 요즘 노래부르는 것을 즐기니 노래 일곱곡을 이야기 중간중간 지루하지 않게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1회성 내지는 2회성의 공연이 될듯하고 일곱 곡의 리스트도 이미 뽑아 놓았다. 아마 연습을 하면서 몇곡이 바뀔수는 있지만, 현재는 이렇게 일곱곡을 부를 생각이다.


1. 마이웨이 - 프랭크 시나트라

2.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 - 이상우

3.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 이상우

4. 타임 인 어 보틀 - 짐 크로스

5. 위대한 탄생 - 드렁큰 타이거

6. 앵두 - 최헌

7. 민물장어의 꿈 - 신해철


마이웨이는 한번 불러보고 나니 내 목소리에 잘 붙는 노래라 자신있게 오프닝 곡으로 부를 생각이고, 이상우 노래 두곡은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는데 멜로디가 마음에 들어 골랐고, 장르도 다양하게 넣었는데, 짐 크로스의 “타임 인 어 보틀”은 영화 엑스맨에서 퀵실버가 매그니토를 감옥에서 데려나오는 슬로우 장면에서 나와 알게된 노래인데 멜로디가 편해서 골랐고, 힙합을 외워서 부르는 건 나에겐 또 다른 도전이라 드렁큰 타이거 노래를 한 곡 골랐고, 최헌의 “앵두”는 최근 영화 <밀수> OST로 사용되면서 알게된 노래인데 짧고 반복되는 노래라 외우기도 쉽고 흥이 나는 노래를 한곡 넣고 싶어 골랐고 마지막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은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가장 어울리고 나의 29년우울증 삶을 잘 설명해 주는 곡 같아 선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민물장어의 꿈”을 맹렬히 연습중이다. 처음에 연습할 때 가사 내용때문에 울컥해서 여러번 펑펑 울었다. 가사 내용이 너무 내 삶애 깊이 오버랩되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가사를 내 나름의 관점에서 해석해보는 글도 써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 뿐

이젠 버릴 것 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나의 여러가지 것들을 제단해야 되는 것 같았다. 세상에 맞추기 위해 자르고 자르고 잘라서 남은게 거의 없는 내 상태. 그런데, 그래도 남은게  하나 있는데, 그게 자존심. 자존심은 여러가지로 해석을 할 수가 있는데, 나도 29년 우울증의 시간동안 수십번 넘게 죽고 싶은 생각을 했고 손목도 그어보고, 옥상에도 올라가보고, 베란다에서 14층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했다. 그런데, 죽음에 다다른 그 순간에 다행히도 나에게 “이런 형편 없는 나라도 살고 싶다”라는 욕망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래, 살고 싶었다. 초라하고 잘하는 것도 없고 이 세상을 살아갈 힘도 없지만, 이런 나라도 이런 나라도 살아남고 싶었다. 다행이었다. 우울증을 가진 많은 분들이 죽음에 대한 충동을 느끼지만, 어떤이들은 충동적으로 행동하여 저 세상으로 가기도 하지만 나는 다행히 충동적이지는 않았고 대단한것 없는 나이지만, 살고 싶었다. 다행히 겁이 많아서 지금 이나이 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가사 속의 ‘자존심’을 나는 생에 대한 욕구로 읽었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 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말고 가라하는]


가사를 보면 고향을 두고 멀리 여행을 떠나온 것으로도 보이고 지방에 살다가 서울 타지에 와서 살아가는 것으로도 해석을 할수 있다. 힘든 순간에 들리는 목소리, “쉬지 말고 가라하는” 이라는 가사도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하여 쉬지 말고 끝까지 헤쳐나가라는 메세지로도 읽을 수 있고, 이 세상이 나에게 말하는 뒤쳐지지 말려면 살아 남으려면 쉬지 말고 움직이라는 메세지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때론 쉴 필요도 있고, 충분히 쉬어야 목표하는 방향으로 다시 힘을 낼 수 있기에 잘쉬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없이]


우울증과 무기력을 심하게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심장이 터질때까지 무언가를 하는 경험은 우울증 당사자는 쉽게 경험하기 힘든 경험이라는 것을. 나의 십대 이십대 삼십대를 돌아보면 무언가를 그렇게 까지 해본 경험이 없다. 심장이 터질것 같은 그 살아 있는 느낌의 경험이 부러우면서도 그런 원동력이 전혀 없는 무기력한 삶. 절망적인 삶. 이 가사 부분을 부르며 엄청 울었다. 지금이야 하루하루 너무너무 신명나게 심장이 벌떡벌떡 뛰는 경험들로 가득채워 신나게 살고 있지만, 그 때의 나는 얼마나 암흑이었나. 무언가를 열심히 달려가는 청춘들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열등감을 느끼고 부러워하고 질투를 했던 나였던가.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맹렬히 삶을 살아갈 필요도 없고, 자기 속도에 맞게 느린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천천히 걸어가면되고,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심장이 뛰도록 뛰어가면 된다는걸 알지만, 그때의 나는 어쨓든 그런 열등감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었다.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없이” 부분도 여러가지로 읽어 볼 수 있는데, 우울증을 심하게 경험한 사람들은 자살에 대한 생각을 누구나 하기 마련이다. 이 생에서의 삶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것을 끝내고 싶어서 그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너무나 부정적으로만 사용하는 사회이다. 물론 자살을 권장하자거나 미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너 자살까지 생각했니?” 라고 묻는 것과 “ 너 자살 생각 해 본 적이었어?” 라는 질문은 뉘앙스가 상당히 다르다. 우울증이 심한 사람이 자살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자의 질문은 자살생각을 했더라도 말문을 막아버리는 질문이다. 자살을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해서 질문하는데, 누가 그런 생각을 편하게 말을 할수 있겠는가.


자살 생각이 간절한 사람에겐 어쩌면 그 자살이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런분들에게 무조건 살아라는 말은 아무런 울림을 주지 못한다. 다만 29년의 우울증의 시간을 버텨 생존해 마흔일곱이라는 나이까지 와보니, 그래도 조금은 버텨보고 방법도 찾아보고 도움도 청하고 그렇게 해보자는 말을 조심히 해 보고 싶다. 그 사람이 괜찮아질 것이라고 낙관할수도 없고 버텨보는 것이 더 괴로운 일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조심히 조금만 버텨보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다보면 지금보다는 조금은 나아질수 있다고 믿어보고 싶다. 나이가 들면 삶에 대해서 조금더 다양한 시선을 가지게 되고 그 여러 시선안에서 나의 우울증을 볼수 있게 되면 조금은 여유가 생기기도 하고 나만 혼자 이렇게 힘들어 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른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장기 여행을 가다보면 그것에 익숙해 지는 순간이 있고, 그 편안함에 길들여지는 순간이 있다. 가사에서는 그렇게 익숙해지는 자신이 두렵다고 했지만, 좀 익숙해지고 게을러지면 어떤가. 그럴때도 있는거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마음의 안식을 얻을수 있는건 아닌거 같다. 겉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는 사람들도 많다. 과거에 집담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을때 나이든 사람들이 나보고 어린 나이에(그 당시 이십대) 자신을 만나는 공부를 하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했지만, 돌아갈 일상이 있고 사회적 위치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 부럽고 질투나고 얄미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생각하니 그때부터 나를 알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 시간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안정적인 나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상담도 토탈 3년여가 넘는 시간을 받았고 그 시간들을 통해 나의 마음을 읽어내고 내 삶을 해석하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가 너무너무 멋지고 좋다. 나이를 먹는다고 마음의 안식을 얻는 것은 아니고, 나에 대한 탐구는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되어야 하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찾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내가 부산경남 우울증 자조 모임을 하려 것은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다만 누군가 우울증을 심하게 겪는 이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라는 메세지를 주고 싶다. 내가 우울증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해서 나의 방법이 다른 우울증을 겪는 이에게 정답이 될 수가 없다. 100개의 우울증은 100가지 형태를 지니고 있고, 그것을 견디고 버텨서 괜찮아지는 방법은 100가지 방법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혼자 아파하지 말고 도움도 청하고 나약한 우리들끼리 손도 잡고 포옹도 해주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잘 될꺼라고 믿어주고 그런걸 하고 싶어서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잘나서 우울증을 이겨낸 것이 아니라 나도 노력했지만, 내 곁에 있어준 그들의 존재와 내 손을 잡아주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내가 받은 것들을 누군가에게 다시 돌려드리고 싶다.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세상이라는 삶에 떠밀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나를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나이가 들어서 그제서야 자신을 알아보려고 나와 직면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 그러니, 처음에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들이 고독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찾아보면 그런 자신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분명 여기저기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러니 고독해하지 말고 외로워 하지 말자.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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