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야기

사이코드라마를 경험하고 탱고를 배우고 누드모델을 잠시 해보다(29년 우울

by 박조건형

사이코드라마를 경험하고 탱고를 배우고 누드모델을 잠시 해보다(29년 우울증경험자의 생존 에세이 10)


오늘은 공주전문대 만화예술학과에 복학해서 다니다 복학과 휴학을 반복했던 그 시절에 했던 세가지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전에 글에서 밝혔듯이 26살에 공주전문대 만화예술학과에 복학을 했지만, 한달정도 바짝 열심히 살다가 그 열심이라는 긴장의 끈이 어느날 무너져 버렸고 학교를 안가고 자취방에 누워만이 있다보니 결국 또 휴학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1년뒤 다시 복학을 했지만, 이번에도 실패, 다시 휴학을 하고 1년 더 공주에서 자취를 하고는 결국 다시 복학하지 못하고 엄마가 계시는 양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그 2년의 시간동안 세가지 경험을 했는데, 이 경험들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첫번째는 사이코드라마를 경험했다. 그때에도 개인상담을 어떻게 찾아서 몇회기 했는데 그때 상담선생님이 사이코드라마가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셨던걸까? 대전에서 사이코드라마를 처음 경험해보았고 주인공인 내담자로 내 이야기를 다루어보기도 했다. 사이코드라마가 과거의 상처나 아픔의 경험에서 하지 못했던 경험들을 몸과 말로 격하게 해보는 경험이라 카타르시스가 상당하지만 반대로 그 후폭풍이 큰 경우가 많다. 사이코드라마 무대 주인공을 경험하고 나면 많은 생각과 감정들로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그 후반작업이 꼭 필요한데, 그래서 사이코드라마를 한 후에는 개인상담을 병행하는 것이 그감정과 생각과 경험을 해석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경제적인 여건이 안되는 분들은 이 작업을 혼자 해야하니 오히려 사이코드라마 하기 전보다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혼란이라는 상태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인식하는데, 다르게 해석을 해보면 다른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한 단계라고 본다. 그 혼란을 잘 감당하고 견디며 아파하고 흔들리면서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하게되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26살의 그 당시, 사이코드라마 주인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무기력했고 열패감과 열등감으로 가득쌓인 상태였다. 사이코드라마 디렉터 선생님에게 여쭈었더니 무기력한 상태 그대로 한번 지내보라는 말을 해주셨다. 아마 무기력이 너무 힘들어 바닥을 치고나면 다시 올라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것 같은데…….나는 그 말을 믿고 그냥 무기력한체로 지내보았다. 그런데 그런데, 다시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죽고 싶은 생각만 가득찬체 무기력만 더 심해지는게 아닌가. 지금은 안다. 누군가 자신을 체크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서 무기력한 상태 그대로 있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 체크하는 사람없이 그렇게 지내는 것은 바닥을 치고 올라오기 전에 저 깊은 심해로 떨어지고 때론 죽음을 선택할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 경험을 통해 상담자들이 아무리 이런말 저런말 해 주어도 그것을 내 삶속에서 구연해 내는 건 나라는 걸 알았다. 그 상담쌤이 그렇게 말을 해도 그 사람은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그러니 상담사를 무조건 믿고 그대로 따라 하지는 말라는걸 체득한 시간이었다. 물론 그 선생님에 대한 원망의 감정은 없다. 사이코드라마를 경험할 당시로써는 좋은 디렉터 선생님으로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사이코드라마 디렉터이지, 전문 개인상담가는 아니었고 자신의 말이 나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려없이 한 말이었을 것이다.


사이코드라마는 지금도 시간과 여건이 되면 종종 참여를 한다. 내가 해결해야할 마음의 문제는 크게 없는 편이지만, 타인의 아픔과 그것을 다루는 과정을 보는 것은 나에게 큰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사이코드라마 작업이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려주거나 위로가 되기도 한다.


두번째는 26살 당시 누드모델을 6개월 가량 경험해보았다. 어떻게 누드모델을 할 생각을 했을까. 서울에 가서 누드모델 협회장님을 만나서 면접을 하고 모델을 할 때 필요한 부분들을 이야기 들었다. 누드모델을 직접 서기 전까지는 혹시 모델을 하다가 발기가 되면 어쩌나 하는 큰 걱정이 있었지만, 그건 기우에 불구했다. 가만이 있는게 힘들기 때문에 발기를 할 여력이 없다. ㅎㅎ 모델을 서다가 잠시 휴식 시간에 걸칠 가운도 사고, 모델할 때 틀어놓을 조용한 음악들도 시디에 녹음해 굽기도 했다. 미대에도 가보았고, 금남의 영역인 이화여대에 간 것도 기억이 난다. 만화예술과 같은 경우는 크로키 포즈를 취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가만히 있는 미대보다는 다이나믹한 포즈를 다양하게 잡아볼수 있는 만화학과 모델이 재미있었다. 6개월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대부분 수도권 지역에 일이 몰려 있었다. 내가 당시 서울에 살았더라면 이 일을 더 오래 했을까. 공주에서 자취를 하던 내가 타 지역에 멀리 이동해야 하고 때론 숙박도 해야 하다보니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그만둔 것일까. 그것보다는 아마 그당시 내가 자주 무기력하고 우울증이 있던 상태다보니 끈기 있게 계속 해내지 못했던 건 아닐까 추축해 볼 뿐이다.


마지막은 대전에 탱고를 추러 다녔던 경험이다. 이것도 6개월정도 하다 그만둔 것 같다. 무엇을 하든 나는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하기에 시작의 결과나 반응은 좋은 편이다. 기초반에서 수업레슨을 들으며 아마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겠지.그런데 나는 그 말들이 오히려 부담이었다. 왜냐면 늘 무언가를 계속 이어서 해 본 경험이 없기에 초반에는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 중간 과정을 뚫고 성장의 경험을 해 본 적이 없기에 탱고 실력은 늘지 않는것 같고 자괴감은 커지고 결국 그 취미를 그만두었다.


지금은 안다. 무언가를 하든 실력이 늘지 않고, 소질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지루한 순간들이 있다는 걸. 그런데, 그 과정을 묵묵히 성실하게 견디며 지나가면 한단계 도약을 하는 성장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가 그것의 재미를 알게되고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래서 무엇을 시작하든 해볼 마음을 먹으면 최소한 6개월에서 1년 이상 그 일을 해보는 내가 되었다. 그 시간을 집중하며 견디며 투자를 했는데도 재미가 없거나 실력이 늘지 않으면 그건 나와맞지 않아서 미련없이 그 일을 그만둔다. 헬쓰를 뛰엄뛰엄 오랜시간 해 오다가 최근에 파워리프팅을 한지 6주가 넘었는데, 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도 나는 최소 1년에서 1년 6개월은 해봐야지 생각하고 시작했고 회비를 아끼기 위해 6개월치 80만원을 한번에 등록했다. 이 운동을 하며 파워리프팅 에세이 글작업도 해볼 마음을 먹었기에 최소 2년이상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최근에 우울증 자조모임 첫 모임을 했는데, 처음엔 모집이 잘 안되어 신청하는 사람이 없었다. 네 곳의 sns(페북, 블로그, 인스타, 브런치)에도 홍보를 해도 아무 연락이 없어서 sns영향력이 있는 지인들에게 홍보를 좀 해달라고 개인적으로 연락해 부탁을 드리기도 했지만 신청자는 없었다. 그래서 에전에 자조 모임을 두번 해보며 알게된(연락처만 저장해 놓은) 우울증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드려보았지만, 답이 없거나 지금 상태가 좋지 않아 참석이 어렫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생각해보니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분명 부산 양산에도 어디인가 많이 존재를 할테고 그럼에도 신청자가 없다는 것은 그분들에게 공지가 닿지를 않았거나 너무 무기력하고 힘든 상태라 참석이 어렵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래서 신청자가 아무도 없으면 나 혼자라도 2시간동안 우울증 관련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한 선생님이 선배님이 자조 모임을 운영하시는데 그분은 최소 6개월은 기본으로 생각하고 하신다는 말을 듣고 나도 아무도 오지 않아도 자조모임을 6개월은 혼자라도 해봐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내가 해볼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운해 해봐야 나중에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후회가 없고 남탓을 하지 않게 된다. 감사하게도 두분의 신청자가 있어 첫 모임은 나 포함 세명이서 좋은 시간을 가졌다.


월요일마다 박조건형의 인물미션 인스타라이브 드로잉 방송을 한다. 지금까지 10회 했는데, 방송을 보시는 분은 별로 없다. 몇 번은 정말 나혼자서 한시간동안 진행을 하기도 했다. 잠깐 들어왔다 나가는 분이 아닌 계속 보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나도 그림을 그리면서 그분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던 그날은 내가 괜히 이거하나 생각도 들고, 의욕도 많이 꺽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것에 굴하지 않는 멘탈 갑의 사나이가 아닌가. 최소한 1년은 매주 월요일마다 21:30에 인스타 라이브 드로잉을 하려한다. 그렇게 성실히 즐겁게 하다보면 들어오는 분들도 늘테고 인물공부하고 싶은 분들이 나의 팬이 되기도 할 것이라고 믿고 즐겁게 부담없이 가볍게 하고 있다.


지금은 이렇게 무엇을 하든 내가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해보고 그래도 재미가 없거나 반응이 없으면 미련없이 그만두는 편이다. 무언가 재미를 느끼려면 소질과 상관없이 성실하게 묵묵히 그 시간을 견디며 보내는 시간이 필요함을 잘 안다. 그 시간을 지나면 반드시 한단계 도약하는 성장의 시간이 있다는 걸 경험적으로 안다.


그러나, 그당시 26, 27의 나는 그런 걸 모르고 그런 경험도 없었다. 중2 부터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시도를 해본 경험도 없고 성취의 경험도 없다보니 조금만 힘들어도 도망을 가고 그만두었다. 탱고 라는 것이 파트너와 함께 하는 춤이다. 실력과 상관없이 파트너와의 친밀도가 없으면 재미를 붙이기 어려운 분야임을 지금은 안다. 그 당시 춤을 추는 밀롱가(춤을 추는 곳을 밀롱가 라 한다) 대전대학교 근처에 있었고 카이스트에 다니는 분들도 많았고 괜찮은 직장에 다니는 분들이 많이 춤을 추러왔다. 나는 만화학과에 다니고 있었지만, 만화를 좋아하지도 못했고 학과 과정을 성실히 이수하고 있다는 자존감도 없었기에 그들을 만나면 늘 열패감을 느꼈다. 거기다가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몰랐다. 일상적으로 무슨 대화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친해질수 있는지 전혀 몰랐다. 춤이라는 것이 자꾸 춰봐야 자신감이 붙고 재미를 느끼게 되는데 그걸 하려면 상대방과 친밀도가 있어야 내가 못해도 춤을 출 수 있는 것이다. 기초 수업에서는 서로 초보인 사람인 사람들끼리 추니깐 따라갈만 했는데, 기초수업이 종료되고 나서는 각자 각개전투인 셈이다. 친한 여성들이 생기면 그들과 자꾸 춰보면 되는데…….사람들과 특히 여성과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 대화를 해야하는지 모르니……..벽을 느끼게 되고 내가 겉도는 것 같고 열패감에 가득쌓여 탱고라는 세계에서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지금의 내 상태라면 사라들과 잘 어울리고 친해진 파트너와 자꾸 춤을 추다보면 묵묵히 성실히 그 지루한 시간을 견디다 보면 실력도 늘고 탱고라는 세계의 재미를 느낄 자신이 있는데…..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해 결국 도망을 치고 말았다.


26살 27살의 세 경험의 마지막은 결국 도망이었다. 너무 미숙했던 나의 아쉬운 경험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아마 누드모델일을 계속 하고 있을수도 있을거 같고, 탱고의 세계에서 고인물로 오래 머물며 재미있게 탱고를 즐겼을것 같은데 말이다. 그때의 미숙했던 나를 괜찮다고 그때의 너는 최선이었다고 보듬어 주고 싶다.

토닥토닥…..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울증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