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최현숙 산문)

by 박조건형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최현숙 산문)


울산에 있는 책빵 자크르에서 독서모임이 있어 읽게된 책이다. 과거에 화명동 맨발동무도서관에서 구술생애사 강의를 들으러 가서 직접 뵌적이 있다. 그때 <할배의 탄생>을 읽고 불편했던 지점을 질문 했는데, 그 지점을 바로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인 어른으로 기억하고 있다. <할배의 탄생>에 불편했던 것은 젠더문제와 계급문제가 부딪일때 계급문제를 먼저 앞에 두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선생님의 책은 <할배의 탄생>이외에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를 읽었는데, 읽었다는 흔적만 있고 리뷰는 남아있지 않았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나이가 마흔일곱이다 보니 나이드는 것, 장애가 생기는 것, 죽음, 약자끼리 서로 관계맺고 살아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고 페미니즘 의제중에서도 이 의제들에 관심이 많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는 지금까지의 여러작업과 달리 선생님 자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산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액취증(겨드라이에서 냄새가 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은데,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솔직하게 밝히는 부분이 놀라웠다. 솔직히 액취증이 있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어떤 냄새가 나는지 경험한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자신에게서 냄새가 남다면 특히 어릴때 심한 컴풀렉스로 오래 남을것 같다.


한국사회는 죽음에 대해 과잉된 사회이다. 그래서 최현숙선생님은 죽음에 대해서 오히려 일부러 건조하게 쓰셨다. 죽음이 엄청나게 비극적이고 슬픈 일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자신의 앞으로의 죽음을 담담히 다루고 계신다. 그리고 본인은 자유죽음을 나중에 선택하고 싶다고 하신다. 자살이라는 단어 대신 자유죽음 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단어에 담긴 사회적인 편견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선생님이 자유죽음을 선택할 날이 오면 그 죽음의 소식을 담담히 나도 받아들일수는 있을 것 같다. 본인이 오랜시간 진지하게 준비해온 삶의 마무리 방식이니깐.


선생님 나이가 67세이다. 요즘 세상에서 60대는 젊은 느낌인데, 선생님의 글은 세상 다 산 사람 글 같다. 본인이 스스로 가난한 삶을 선택하고 삶을 단출하게 만드셨다. 가난한 삶은 선택지가 적기도 하고 건강에 취약하기 때문에 선생님의 삶의 방식에서는 67세가 내일 죽어도 괜찮은 나이 이겠지만, 나는 60대, 70대에도 그 나이에서 적극적으로 누릴수 있는 삶을 즐기며 살 생각이기에 선생님의 방향성이 멋지다는 생각은 안든다.


그리고, 선생님의 글은 좀 재미가 없다. 진보지식인 인문학적 공부가 담긴 글이다 보니 단어 선택을 보면 딱딱하거나 올드하다는 느낌도 든다. <할배의 탄생>과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에 이어 이 산문까지 읽으며 느낀점은 선생님의 글은 내 취향은 아니라는 것. 삶이 단출해지면 삶에서 즐길거리들이 줄어들게 마련이고, 선생님의 생활의 모습이 나는 심심하게 느껴진다. 책을 읽고 글을쓰고 일상을 사유하고 강연하는 삶. 그 외에의 선생님의 즐거움꺼리를 나는 글에서 찾지 못했다. 오랜시간 진보활동을 한 지식인의 분열적인 모습을 보게된다. 물론 자신의 분열적인 모습을 솔직히 드러내는 모습은 놀랍지만, 가난한 삶을 선택했으면서도 왜 타인에게 스시 한끼 얻어 먹었다고 불편함을 이틀이나 가지고 가실까.


선생님은 남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자유죽음을 선택하겠다는데, 남한테 폐도 끼치고 신세도 지고 도움을 받으며 살면 안되나? 오랜시간 사회적인 의제를 중심에 두고 진보적인 활동을 했으면 그만큼 좋은일도 많이 하셨는데, 자립이 불가능할때는 남의 도움을 받으면 안되나? 고고하게 늙다가 구차한 모습보이지 않고 자유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모습이 스스로 자본주의 세상에서 고립되어 자존하겠다는 의지처럼 느껴져 나와는 참 많이 다른 분이다는 생각이 든다.


매스컴에서 다루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의제는 자기계발 서사로 자본주의 세상이 팔아먹을려고 만든 메세지라고 생각한다. 늙음에 대한 혐오도 담겨 있는 메세지이다. 나이는 나이다. 70대 할머니가 헬쓰로 몸을 멋지게 가꾸어도 그분의 몸은 다른 70대의 비해 젊을 뿐, 70대인 것이다.


하지만, 40대는 40대대로 60대는 60대로 자신이 처한 경제적인 여건이나 몸의 장애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가질수는 있다. 나이는 수긍하되 그 나이에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삶. 나또한 경제적인 능력이 점점 줄어갈 것이긴 하지만, 나이들어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돈때문에 못하고 싶은 경험이 많아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돈공부도 느슨하게 꾸준하게 하고 있다. 물론 돈에는 대가가 따라서 가진만큼 대가가 있지만, 나는 어느정도는 버는 삶을 지향한다. 자본주의 세상에 살면서 비자본주의적으로 살겠다는 선생님의 태도는 존중은 하지만, 내가 지향하는 바는 아니다.


중간에 손녀들에 대한 입장을 자신의 생각으로 풀어본 글도 있는데…..뭐 그렇게까지 해석을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고를 깊게 파고 들어 저 밑까지 밀어부쳐 사유하는 습 때문에 그런 글이 나온 거 같은데, 물론 나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친한 친구의 딸들을 태어났을때부터 지금까지 보고 만나며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려고 해야하는지 조금은 알것 같은 기분이기는 하다.


”p104 - 그녀의 죽음 장면은 두고두고 선물이다“ 를 읽는데, 눈물이 났다. 자신의 부모가 소멸해 가는 전 과정을 바로 곁에서 목도할수 있다는 것은 삶을 깊이 이해한다는 점에서 선물이라고 생각하신거 아닐까. 나의 할머니도 96세이신데, 아직 정정은 하시다. 내일 주무시다 돌아가신다 해도 이상한 나이는 아니다. 언젠가 할머니의 부고를 들을거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자유죽음과 관련해 한국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담론도 터부시하고 있지만, 자살에 대해서는 더욱더 입을 닫고 있다. 29년 우울증 경험생존자로써 우울증이 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살을 생각한다. 그건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다. 이 생에서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더 살고 싶겠는가. 이 생이 너무 괴로워 자살을 어렵게 이야기 한 사람에게 죽으면 안된다. 남겨진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살아라고 하는 이야기는 폭력적이다. 자신이 우울증 당사자를 대신해서 살아줄 것도 아니고 우울증 당사자의 회복을 위해 항상 옆에 있어줄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죽지 말라고 쉽게 이야기 하는가. 그 소리할 시간에 왜 그가 죽고 싶어하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아픔을 같이 느껴볼려고 노력하는게 당사자에게 도움이 된다는걸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자살을 권장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이시간에도 자살하는 사람은 존재한다. 그들이 자살을 선택하지 말길 바란다면 그들의 힘듬을 쉬이 말할수 있는 분위기의 사회를 만들려고 애쓰길 바란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선생님은 타인의 의견을 잘 수렴하고 듣는 분이다라는 거다. 나의 작은 책감상도 자신의 산문을 이렇게 읽는 사람이 있구나 이해하시리라 싶다. 가난한 진보적인 지식인 활동가의 자기 분열적인 적나라한 고백 정도로 이 책에 대한 평을 하고 싶긴하다. 물론, 그 고백안에는 우리 사회가 함께 입밖으로 내어 이야기 나누고 고민해야할 화두들이 참 많다. (그림들은 과거에 선생님에 대한 팬심으로 그렸던 5,6년전의 그림들을 블로그에서 긁어왔다)


p17 - 사과, 용서, 화해 등의 단어는 너무 애매해서, 나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p24 - 치매는 ‘미치광이’와 ‘어리석음’을 의미하는 한자어로 이루어진 말이어서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대체어) ‘인지저하증’.


p50 - 내 냄새가 타인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수긍한다. 혹 누가 내 냄새를 알아챈다면, 그런 나 자신으로 그들과 관계 맺는다.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관찰한다’. 불가피함에 갇힌 당사자에 대해 혐오를 들어내는 상대의 태도를 보며 그의 사람됨을 가늠하고, 알아들을 만한 사람이면 지적한다. 내 상처가 하는 맛깔나고 타당한 복수다.


p81 - 그 작심과 자유를 위해서는 타인들의 비난과 몰이해를 각오해야 하고, 가까운 사람들과도 피차간에 상처를 주고 받음을 감수해야 한다.


p88 - 설득이 되면 설득할 일이지만, 설득이 불가능하면 관계를 위해 존중하는 것이 답이다.


p89 - 마치 건강이나 생명 자체를 삶의 최고 목적으로 삼은 듯 느껴져 외람되지만 섬뜩하다는 느낌도 든다. 개개인의 맥락이야 일일이 모르니 판단할 생각은 없고, 휩쓸림에 대한 거부감이자 ‘대체 왜 걷는가?’와 ‘대체 왜 사는가?’에 관한 우선 나를 향한 질문이다.


p100 - 죽음에 대해서는 사회 전반에 유난히 감정이 과잉되어 있다. 내가 죽음에 대해 유독 건조하게 쓰는 이유다.


p 113 - 상처가 힘이 되기 위해서는 분노와 저항을 거쳐 성찰과 만나야 한다.


p215 - 여자랑 살면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치욕감 없는 가사노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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