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

너 감자를 소금에 찍어먹냐? 아니면 설탕에 찍어먹냐? 관람 후기

by 박조건형

너 감자를 소금에 찍어먹냐? 아니면 설탕에 찍어먹냐? 관람 후기


30대 초반에 연극을 아주 적극적으로 많이 보러 다니던 시기가 4년정도 있었다. 같은 연극을 재관람 삼차 사차관람까지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뒤에는 1~2년에 한번씩 연극을 보는정도였다.


오랜만에 보는 연극이었다. 지원금을 받아서 하는거라 아마 그지원금으로 스텝과 배우들에게 페이가 돌아갈테고 그 덕에 무료로 토요일 공연을 예약하고 관람했다.


1시간 10분의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화명역 1층 갤러리로 사용되던 공간을 연극무대로 쓰는거라 객석이 무대 바로 앞이어서 배우들의 연기를 후덜덜 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객석과 가까우면 배우들이 긴장을 할수도 있을텐데, 관객들이 뚤어져라 쳐다보는 눈빛에 지지않고 배우들이 무대를 장악해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대사가 몇번 씹히기는 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레 연기했다.그게 프로페셔널한 태도이겠지.


이야기의 구성은 간단하다. sns인플루언서로 유명세를 타며 활동하는 수연이 5000만원짜리 작품을 구매한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 그림은 하얀색 캔버스에 하얀색 선이 대각선으로 그어져 있는 작품이라지만, 우리가 보기엔 하얀 판때기처럼 보일뿐이다. 쓴소리 잘하는 규리는 대놓고 하얀 판대기를 어떻게 샀냐고 비아냥 거리며 둘의 갈등이 고조된다. 구제옷가게를 하고 곧 외국인과 결혼을 하는 순자는 황희정승 같은 친구. 규리에게는 규리의 편을 들어주고, 수연에겐 수연의 편을 든다.


오래된 친구관계에서 흔히 볼수있는 갈등관계이다. 내가보기엔 규리가 심했다는 생각이 크다. 규리는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까지 한 친구. 솔직함이 관계에서 핑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잘 흥분한다고 해도 20년된 이 관계가 중요하다면 말을 가렸어야 한다.


수연이 5000만원 짜리 그림을 소개해 주었을때 속으로는 하얀 판때기라고 생각해도 겉으로는 그냥 나는 잘 모르겠네…말을 흐리면서 수연의 설명을 들었어도 되지 않나?


연극말미에 규리가 왜 수연에게 화를 내는지 이해가 되는 내용이 나오는데, 수연은 과거에는 규리와 잘 어울려 지냈다. 그런데, 인플루언서가 되면서 유명세도 생기고 자기 생각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둘의 관계에서 독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규리또한 독립적인 사람이었다면, 수연의 독립을 섭섭하지만 받아들였을텐데, 멀어진 수연때문에 자신이 상처 받았다고 생각하고 5000만원짜리 그림을 핑계로 독설을 쏟아부은 것이다.


하얀색 캔버스가 5000만원짜리라는 설정은 미술작품에 매겨지는 가격시장에 대한 풍자로도 읽어낼수 있다. 그 작품에 대해서 해석하는 사람이 사회적, 문화적 자본이 높은 경우 그 그림값은 높은 가격이 책정되게 된다. 어디 미술에만 한정되는 걸까. 어떤 소설이나 에세이도 그 책이 유의미하다고 해석해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작품의 위상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작품적으로 별로이더라도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고 좋게 해석하는 평론가들의 위상이 높으면 작품의 질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기도 한다. 그것에 대한 풍자로 읽혔다.


다시 관계의 문제로 돌아와서 세명의 갈등관계는 어떻게 파국으로 갈까 긴장하며 보는데, 갑자기 해피엔딩으로 봉합을 시켜버린다. 그것도 관계의 균등한 봉합이 아니라, 5000만원짜리 그림을 산 수연이 규리에게 매직을 쥐어주며 그림에 그림을 그리게 만들고 그것을 보며 셋이서 웃고 맛있는걸 사먹으러 가는 것거로 봉합된다. 관계의 갈등을 꼭 봉합을 시켜야하는지도 의문이고, 한쪽의 큰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봉합(수연에겐 5000만원의 경제적 타격을 안긴 희생)이었다. 차라리, 연극초반에 나온 대사처럼 그 그림값에 웃돈 500만원을 더 주고 사겠다는 갤러리 대표에게 그림을 팔면 더 좋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불편한 엔딩을 좋아하진 않지만, 20년된 관계라고 해서 그들을 그렇게 억지로 화해 시켜야했을까. 관계라는 것이 때론 엇갈리기도하고 오해로 관계가 멀어지기도 하는데, 세명의 관계도 멀어지거나 깨어지는 엔딩이었어도 괜찮지 않을까.


세명은 20년 지기이다. 그러나 관계의 밀도는 시간의 밀도와 다른 문제라고 본다. 흔희 부부관계가 20년되면 서로 다아는 것처럼 말하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관계가 소중한 관계라면 5년에 한번, 혹은 10년에 한번씩 관계를 재정립하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주인공 세명이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점검해봤어야 한다. 그냥 익숙해서 편해서 함부로 대하면 그 관계는 밀도 있는 관계가 아니라 그렇고 그런 관계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우리부부가 만난지 14년차 이지만, 10년마다 앞으로 또 10년 잘 살아봅시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래된 관계이면서 소중한 관계라면 더욱더 노력을 해야한다.


세명의 배우들이 너무 열연해서 때롯 하하하 크게 웃고, 때론 그들의 갈등에 몰입해서 심각해지며 본 작품이었다. 그리고, 관계에 대해서 갈등을 푸는 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무대에 여유공간이 있었다면 구석에 짱박혀 있다가 배우들의 지인들이 빠져나가고 난 다음에 배우 세분들과 사진이라도 찍었을텐데, 다들 각자의 지인들에게 둘러쌓여 있으니 어디 잠시 머물를데가 없어 조용히 무대를 빠져나왔다. 좋은 공연 보여주신 배우님, 연출님, 스텝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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