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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리히터, <두 개의 촛불>(1982)(그림단톡방 10번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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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 초. 어둠속에서 나홀로 빛을 밝히는 거라면 외롭기도 하고 힘들것 같다. 내 생각이 아무리 옳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더라도 흔들릴수 밖에. 나도 남들처럼 저렇게 살아가야 하는건가? 하는 회의가 계속 나를 흔들리게 할 것 같다. 그런데, 옆에 초가 하나 더 있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나는 잘 안다. 물론 촛불 B가 촛불 A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옆에 있을 수 있다. 온전히 이해받는 것이 오히려 불가능한 목표이다. 그냥 어느정도 비슷한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내가 상대에게 동료 촛불이 되고, 그가 내게 동료 촛불이 되고. 두 촛불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둘 필요는 있다. 너무 가깝게 붙어버리면 나를 잃어버릴수도 있다. 촛불 A의 고민과 생각을 촛불B가 온전히 다 이해하고 촛불 A처럼은 생각할수 없다. 촛불 A의 짐은 A스스로 감당하고 짊어지기는 해야 한다. 그래도 옆에 내 친구가 있다면 조금 힘이 날 것 같다.
내가 살아온 과정은 나랑 비슷한 촛불을 찾는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허허벌판에 나 홀로 촛불을 켜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만 이상하고, 나만 별종이고 그래서 저들이 부러웠었다. 왜 일상적인 기본생활조차 어려워하는 나인지….하는 원만감과 부러움. 근데 촛불로서 살아가는 것은 내가 어쩔수없는 문제임을 받아들이고 나니 이제는 촛불로 살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내 주변에는 조언을 구할 어른은 없었다. 그래서 생전 읽지 않던 책을 찾아 도서관을 향했고, 도서관의 책속에서 나와 다른 많은 촛불들의 생존 이야기를 만났다. 아…나같은 촛불이 세상에 참 많구나 하는 위안. 그래서 열심히 다양한 촛불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의미있는 촛불의 이야기라 생각이 되면 늘 글로 기록을 남겼다. 멋진 후기일 필요도 없고, 이런 촛불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기록을 한다. 촛불로 살아가야함을 받아들이기까지 외롭고 두렵고 불안한 촛불들이 얼마나 많을지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와는 다르지만, 나와 다른 촛불의 이야기를 읽으면 조금은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내가 촛불로서의 삶을 일상을 늘 기록하는 것은 또 다른 촛불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촛불로서의 삶을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을 필요는 없다. 촛불이 아닌 그들은 그들대로 그냥 살면된다. 내가 그들에게까지 이해받을 필요는 없다. 그래도 몇몇 촛불에게 이해받고 수용받게 되면, 그래서 나를 믿어주고 좋아하는 내편이 몇몇있으면 그래서 이 험난한 세상은 살아갈만한 것이라고 믿는다. 일상을 수시로 기록하지만, 댓글이 많이 달리지 않는다. 얼마나 읽었는지 얼마나 그들에게 나의 글이 다가갔을진 모르지만, 가끔 내 이야기에 공감하는 촛불들이 댓글을 달아준다. 그러면 참 반갑다. 좋아요나 하트만 표시하는건 내게는 큰 의미는 없다. 좋아요보다는 몇자라도 끄적거려 댓글을 달아주는 그 적극성이 반가운 것이다. 그렇게 알고 있는 사이로 지내다가 어느날 어느 공간에서 만나지기도 하고 그가 카페나 책방을 하고 있으면 그 공간을 찾아가보기도 하고 시간을 내어 약속을 하고 만나본다. 그렇게 나와 비슷한 촛불 친구들을 하나하나 늘려간다. 촛불친구가 얼마나 많냐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렇게 나랑 비슷한 촛불을 찾는 노력, 촛불을 만나보려는 애씀의 태도를 평생 가지고 살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중요한 건 나와 비슷한 촛불을 만나보려고 노력하고, 그 촛불을 이해하려고 공부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이가 들어도 살만하고 나이가 들어도 삶이 좀 재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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