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ungeun Sung Oct 23. 2024

교수로 산다는 것 4: 꿈과의 거리

꿈과는 거리가 있다

교수로 산다는 것은 (대부분의 모든 직업인들이 그렇겠지만) 생각보다 꿈을 이뤘다거나 꿈의 직업을 얻은 느낌은 아니다. 물론 평생의 꿈을 이뤘다, 어릴 적부터 항상 교수가 되고 싶었다는 교수님들도 있 것 같다. 그런 분들을 보면 좀 부럽다.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한데, 나는 그냥 적당히 나쁘지 않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느낌이다. 어디서 뭘 하고 어떻게 살든 간에 역시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 설레거나 가슴 뛰는 그런 꿈의 직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나게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긴 하다. 확률적으로 전 세계 박사 학위자들 중에 교수가 되는 사람들이 1퍼센트가 안된다고 하니 박사 졸업생들 100명에 한 명도 교수가 안 되는 것인데, 그런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교수가 된 것에 대해서도 아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나는 한국에서 두 번의 직장 생활 실패, 혹은 부적응의 경험이 있기에, 엉겁결에 영국에서 교수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7년이 넘게 이렇게 큰 불만 없이 직장 생활을 잘하고 있음에 특별히 더 감사하다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서 꿈 타령을 하는 것은 너무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꿈이 뭐 대수인가. 매일 때려치우고 싶지 않고, 견딜만한, 나쁘지 않은, 적당한 직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다. 때 되면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고, 내가 나를 경제적으로 책임질 수 있으며, 그래서 주변에 폐를 끼치거나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혼자 잘 살 수 있는 것이 어디인가.


커리어의 무덤

교수로 7년이 넘게 학계에 잘 지내고 있어서 참 감사한 와중에, 이게 나의 꿈의 직장이고 아니고와 상관없이 별개로, 이제 나의 커리어(career)는 여기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커리어의 무덤에 와있구나, 하는 생각든다. 지금 하는 연구나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 이외에 내가 달리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싶고, 회사나 어떤 다른 고용주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더 싼 연봉에 나만큼 똑똑하고 성실한 젊은이들을 고용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닐 것 같다. 내 연구 분야 자문이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굳이 나 같은 사람을 고용하려는 (대학교 이외의) 고용주가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뜬금없이 갑자기 전혀 경험도 없는 무슨 사업을 할 것도 아니다. 학계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앞으로도 계속 교수를 하는 것 이외에 밥 빌어먹고 살 다른 방법이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러고 보면 내가 L사를 다닐 때 부사장으로 잠시 오셨던 학부 때 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그때는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별 일 아닌 것처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진짜 대단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아무리 교수로 일을 잘하고 디자인을 잘 가르친다 해도, 내 평생 어느 대기업의 부사장 같은 높은 직위로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지금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가능한 가장 큰 커리어 변화같은 학계 안에서 학교를 옮겨 가는 정도 밖에는 없 것 같다. 퇴직하기 전에 적어도 한 번쯤은 학교를 옮겨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도 한데, 그것도 언제 그렇게 할지는 잘 모르겠다. 학교를 옮겨 가면 환경과 주변인들과 시스템의 차이야 있겠지만, 매일 하는 일의 차이는 그다지 있을 것 같지 않다. 수업, 학생 지도, 연구 활동, 보직, 대외적인 활동, 등등 교수로서 하는 일이 어딜 가나 좀 뻔하다. 한국이고, 영국이고, 미국이고, 프랑스고, 어디 간에 다양한 나라들에서 교수로 일하는 친구들이나 지인들 얘기를 들으면 누구 한 명 대단히 다른 일 (혹은 더 나은 일이나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 않다. 그러니 굳이 이직 스트레스를 감수하고 싶은 결정적인 동기부여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기왕 하는 거

교수로서 일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다 비슷한 점이 있다 보니, 끝까지 다 살아보지 않아도 대충 어떨지 알 것 같은 예측가능함 있다. 꿈의 직장도 아니고, 커리어의 무덤에 있기도 하니, '그렇군, 내 인생은 앞으로 이렇게 뻔하게 흘러가는 것이군', 하고 좀 우울한 느낌이 들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우울함을 걷어내고 좀 직장 생활에 활력을 주기 위해서라도 다양역할들을 해보는 것이 더 재미나고 좋다고 생각한다. 또 기왕 교수를 하는 거 언젠가 능력과 경력된다면 총장까지는 못되어도 학장이나 부총장 정도까지는 해봐도 좋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한다. 아, 물론 다 시켜주셔야 할 수 있는 것이긴 한데, 시켜만 주신다면 그 언젠가 아주 열심히 잘해볼 마음이 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내가 꼭 어디서 뭐가 되어야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뭘 열심히 하고 있는 건 전혀 아니고, 모든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도 뭐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과 마음의 평화, 매일의 만족감, 행복, 여유, 사랑, 배려 같은 것들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냥 평화롭고 소소하게 퇴직할 때까지 교육과 연구 활동만 해도 좋을 것 같. 그렇더라도 지금 당장은 너무 반복적이거나 매일 쳇바퀴 도는 것 같지 않도록, 혹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환에서 다양한 역할들을 도맡아 하는 편이다. 기왕 하는 거, 지루함이나 무료함을 느끼는 것보다는 차리리 새로운 역할들을 맡으면서 활력이 있고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특히 남들이 안 하려고 피하는 보직들을 나는 굳이 하는 편이기도 하다. 평소 항상 보직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편이어서 어디 새로운 보직 공고가 뜨면 바로 신청을 안 하기는 하는데, 두 번째나 세 번째 공고가 뜨면 신청을 한다 (그리고 보통 된다). 두 번째/세 번째 공고가 뜬다는 것은 사람을 못 찾았다는 것이고, 그러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딱히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어떤 (티는 안 나고) 봉사직일 확률이 높다.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남들이 별로 선호하진 않지만 학교 운영을 위해서는 어찌 되었든 필요한 보직들을 특별히 더 많이 하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한 명 되어버린 것 같다. 어떤 보직은 하자마자 그만두고 싶어지기도 하고, 어떤 보직은 평생 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보직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지만, 아무튼 대부분의 보직들은 1년 혹은 2년으로 기한이 정해져 있어서 좋든 싫든 시간이 지나면 다 지나간다. 기한이 정해진 새로운 보직들을 맡으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고 의미가 있다 생각한다. 사회생활 부적응자였던 나에게 정상적인 직장 생활이 가능한 사람처럼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우리 학교에게 내가 작게나마 공헌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언젠가 먼 미래에 어떤 매니저 위치에라도 가게 된다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들이기를 바란다.


서도 말했지만 원래 교수가 내 꿈도 아니었고, 여기서 더 승진을 하든, 학장이 되든 총장이 되든, 그 또한 내 꿈은 아 것 같다. 물론 승진을 하고 연봉을 더 받고 새로운 역할들을 맡으면 신날 것 같긴 하다. 또 혹시라도 학장 같은 높은 위치에 올라갈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주 신나고 즐겁고 감사할 것이다. 그래도 막 내 평생의 꿈을 이뤘다는 벅차오름, 감격 같은 건 없을 것 같다. 지금껏 열심히 했고, 열심히 한 성과가 있었고, 그 성과를 인정받은 뿌듯함은 있겠지. 그렇다면 이루었을 때 막 벅차오를, 감격스러울, 이제 남은 여생에 한이 없다 느껴질 만한 그런 나의 꿈은 대체 뭘까? 내가 꿈이 뭐였지? 마지막으로 내가 꿈꾸었던 것 뭐였더라? 지금 기억을 돌이켜 보면 고등학생 때 슈바이처의 꿈을 꾸면서 의대에 가야지 생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고등학교 다닐 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정황에 따라 의대에 가지 못했고 산업디자인과에 갔었다. 그 이후로는 그냥 어찌어찌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은 의대에 가지 못하고 의사가 되지 못한 것이 나에게 잘 맞는 선택이었다 생각한다. 주변에 의사인 친구들이 많은 편이라 간접 경험을 제법 많이 해왔는데, 나로서는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인 거 같다. 나처럼 체력도 저질이고 정신력도 약한 천하의 개복치 같은 인간은, 의대를 가거나 의사가 되었더라 아마 진작에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옛날 생각을 하다가 너무 딴 얘기를 길게 해 버렸는데, 그래서 지금 하는 디자인과 교수가 아니면, 뭘 하면 꿈을 이룬 것 같을까, 생각을 해보면 잘 모르겠다. 이것은 마치 내가 지금껏 10년이 넘게 (대단한 열정 없이) 해온 업싸이클링 연구가 아니면, 내가 정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연구 주제는 무엇인가, 와 비슷한 맥락의 고민인 거 같다. 너무 긴 세월 동안 꿈이고 자시고 생각할 겨를이 없이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만 해결하고 살아왔어서 그런가, 뭐 꿈이라는 게 꼭 있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꿈 없어도 지금껏 나름 잘 살아왔는데 뭐 어때, 싶다. 직장 생활은 내 꿈이 아닌 것 같으니 때려치우고 꿈을 찾아 떠난다는 그런 사람들은 좀 복에 겨운 사람들이거나 혹은 집에 돈이 많아서 아무래도 돈 걱정이 없는 아주 부러운 사람들일 것 같다. 나는 특히나 지금 아주 아주 어렵게 어렵게 이 먼 영국까지 와서 겨우겨우 찾아낸 잘 다니는 직장이고, 내가 아니면 나만큼 나를 잘 먹여 살려줄 사람이 달리 없기 때문에 이게 꿈이 아니라고 때려치울 여유 같은 것은 없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 '교수가 아니면 무슨 꿈?'이라는 것은 의미 없는 질문이다. 교수라는 직업은 꿈과는 거리가 있는지 몰라도 나에겐 지금 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장 든든한 현실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본인들의 직업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시리라.


장과 

교수가 꿈이 아니면 그래서 뭐가 꿈이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왜 어릴 때 우리는 직장이나 직군을 마치 꿈과 동의어나 유의어인 것처럼 썼었는가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이를테면 내어린이거나 학생이었을 때 (80-90년대) 어른들이 흔하게 했던 질문은 '커서 뭐가 되고 싶으니?' 혹은 '꿈이 뭐니?'였던 거 같다. 그러면 나를 포함하여 아이들은 '나는 커서 xxx가 되고 싶어요'라든가 '내 꿈은 xxx가 되는 거예요'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직군을 얘기했던 것 같다. 아무도 '나는 커서 모두에게 친절하고 어린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훌륭한 어른이 될래요'라고 하거나, '내 꿈은 귀여운 북극곰들을 지켜내는 겁니다'라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시절 우리는 왜 그렇게 꼭 직업적으로 누군가가 되는 것 내지는 직업적인 꿈이 그렇게 중요시되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가 자라날 때만 해도 아주 잘먹고 잘살던 때 아니었고 (어릴 때 연탄 쓰던 기억이 남) 우리 부모님들 세대에는 한 직업을 평생 가지던 때였어서, 특정 직업을 가진다거나 아무튼 직업적 성공을 통해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론 지금도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 모두의 일차적인 고민인 것임은 변함이 없지만,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이랄지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 같은 것이 예전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아주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누구도 뭘 못 먹고 못 사는 시대는 아닌 것 같고, 그러니 예전처럼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남아있나 모르겠다. 요즈음 특히 젊은 친구들은 (이라고 써놓고 보니 내가 늙은 친구들 중에 한 명인 거 같군, 흑) '어떤 가치를 위해' 일하는가라든가 '어떻게' 일하는 가를 더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그러니 요새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예전과 같은 '커서 뭐가 될래', '꿈이 뭐니' 질문을 한다면 아이들 대답이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아이들은 '나는 커서 지구 온난화를 막는 사람이 될래요'라고 하거나 '내 꿈은 일주일에 3일만 일하고 이틀은 자아실현에, 또 이틀은 취미생활과 휴식에 쓰는 겁니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직장 안에서의 꿈

내가 멀쩡히 잘 다니는 직장을 그만둘 리 없으니 직장 안에서 내가 이룰 수 있는 꿈(혹은 꿈 비슷한 무언가는) 뭘까 좀 생각을 해봤다. 뭘 하면 일상적인 직업적 만족감이나 뿌듯함을 넘어서서 아주 자랑스럽게 느껴질까? 뭘 해야 아, 이런 내 모습이 너무 멋지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다른 교수님들 중에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교수님들은 내가 왜 멋지다고 생각하는 걸까 생각해 봤다. 나의 리서치 멘토인 가브리엘 교수님은 영문과 교수님이고 셰익스피어 연구를 하시는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같이 협업을 하면서 셰익스피어의 현대적 연구와 재해석에 있어 선구자적인 연구자로서 아주 왕성하게 논문과 책을 내시고, (연구비 없이 책만 읽으면서 연구를 할 것 같은) 영문과에서 거의 유일하게 연구비도 많이 받으시는 교수님이시라 멋진 거 같다. 본인 연구를 아주 재밌게 열심히 하시면서 항상 소탈하고 겸손하시고, 교수로서의 어떤 격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자연스러움과 따뜻함이 항상 느껴지고 친근함이 있어서 더 멋지신 거 같다. 우리 단과대의 부학장(Associate Dean in Research and Innovation)인 쉬본 교수님은 어떤 미팅에서든 아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민주적리더십의 전형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람으로서, 단호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따뜻한, 나도 저런 리더가 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느끼는, 항상 뭔가 배울 것이 있는 멋진 교수님이시다. 두 분 다 연구 활동을 열심히 하는 (나를 포함한) 교수들 모두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특히 내가 어떤 성과를 낼 때마다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 주시고 축하해 주시는 게 느껴진다. 원래 누가 잘될 때 내 일처럼 축하해 주고 같이 기뻐해 주는 것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같이 슬퍼해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 것이다. 이 두 분의 교수님들은 본인들이 이룰 만큼 다 이루고 인정을 받아서 그런지 매사에 아주 여유가 있고 대인배들이라는 인상이 든다. 두 분이 현재 나의 가장 큰 롤모델들이시고, 아, 이런 훌륭한 교수님들과 같은 학교에서 일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고 좋다는 생각이 들며, 너무 많은 도움을 오랫동안 받아오고 있어서 약간의 부채 의식도 가지고 있다. 한 10년 즈음 뒤에 나도 가브리엘 교수님과 쉬본 교수님을 합친 것 같은 그런 교수가 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직장 밖에서의 꿈

직장 안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멋지고 이상적인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 치고, 직장 밖에서는 뭐가 꿈에 가까울까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단한 인생의 업적 같은 꿈은 떠오르지 않는다. 꿈이라고 말하기엔 좀 거창한 것 같고 부끄럽지만, 앞으로 이렇게 살면 좋을 것 같다, 이런 걸 해보면 좋을 것 같다, 같은 소소한 바람 같은 것들은 있다. 이를테면 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00세 시대니 100살까지는 산다고 아주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본다면, 100살이 넘어서까지 크게 아프거나 불편한 데가 없이 건강하고, 내 한 몸은 내가 책임질 수 있고 독립적으로 잘먹고 잘살수 있으면 좋겠다. 100살이 넘어서도 지금이랑 똑같이 생겼을 수는 없고 당연히 노화의 흔적이 자연스레 쌓여가겠지만 최대한 곱게 늙으면 좋을 것 같다. 우주 최강 동안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님이 나의 롤모델이시다. 일은 체력이 되는 만큼, 학교가 나를 계속 필요로만 한다면, 최대한 늦게까지 오래오래 계속하고 싶다. 퇴직을 하고 나서도 책을 쓰거나 강연을 하는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들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일과 사회적 활동들과 함께 체력이 닿는 만큼 여행을 계속 다니면서  최대한 많은 세상의 이모저모를 보고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내가 언제까지 영국에 계속 거주할지는 모르겠으나, 영국에 사는 동안에는 시간과 돈과 체력이 되는대로 유럽 구경을 다니고 싶다. 네덜란드 3년, 영국 11년, 거의 15년 가까이 유럽에 살고 있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나라들도 많고 안 가본 도시들 넘쳐난다. 영국에서 퇴직할 때까지 앞으로 20년 혹은 30년을 더 살면서 유럽을 최대한 여행하고 즐기지 못한다면 그것만 한 인생의 낭비가 없을 것 같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다양한 공연들도 좋아하니까 언젠가 좀 더 여유가 있을 때 좀 더 본격적이고 전문적으로 감상을 하거나 평론 같은 것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도 이런저런 취미 생활들을 많이 시도해 본 편인데, 앞으로도 다른 새로운 것들에 계속 도전해 보면서 취미 생활 발굴을 이어 가고 싶다. 예를 들어 항상 영어로 학구적이고 학문적인 글들만 쓰다가 이렇게 한글로 내 얘기를 쓰는 걸 올해 8월부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어서 놀라워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재밌을 줄 알았으면 진작 시도했었을 텐데, 하고 아주 안타까울 정도다. 앞으로도 더 풍성한 취미 생활을 즐기는 취미 부자가 되고 싶다. 혹시 내가 이걸 해봤는데 진짜 깜짝 놀라게 재밌다는 게 있으신 분은 꼭 연락 주시길 바란다.



  




 

이전 08화 교수로 산다는 것 3: 연구 주제에 발목잡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