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는 바쁘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다른 속도가 존재하지 않을까?
이 도시는 바쁘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다른 속도가 존재하지 않을까?
서울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바쁜 도시입니다.
어느 대도시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도시의 일부로 살아가는 사람과 여행객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런던을 여행하고 나서 “런던은 여유로운 도시였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런던이 여유로웠던 것이 아니라, 그가 여행객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얼마 전 깨달았다고 합니다.
서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에게는 빠듯한 도시겠지만, 서울에 놀러 온 누군가에게는 그 모든 움직임이 하나의 풍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 속에서도 잠시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완전히 다른 느낌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그 경계에 서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서울 시청 서소문 청사 13층, 정동 전망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서울에도 전망대가 없을 리가!
도쿄를 여행한 적이 있다면, 신주쿠 도청 전망대가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높은 공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경험. 서울에도 그런 곳이 없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정동 전망대는 조금 다릅니다.
이곳에서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스카이라인이 아니라, 서울의 겹쳐진 시간들입니다.
바로 아래로 보이는 덕수궁과 돌담길, 그 너머로 늘어선 고층 빌딩들.
오래된 것들과 새롭게 세워진 것들이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익숙한 풍경도 조금 낯설게 보였습니다.
늦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
제가 찾았던 날, 정동 전망대의 풍경은 늦가을과 겨울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하늘은 높고 맑았고, 바람은 차가웠습니다. 하지만 덕수궁 돌담길에는 아직 단풍이 남아 있었고, 나뭇가지마다 가을의 마지막 흔적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햇살이 비치는 한낮의 서울은 선명했습니다. 빌딩 숲 사이로 오래된 궁궐의 지붕이 보이고, 돌담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점처럼 내려다보였습니다. 그리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도시는 다시 차분한 색을 띠었습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출근길에 걷던 익숙한 거리도, 이렇게 높은 곳에서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이 되는구나.
한적하지만, 외롭지 않은 곳
정동 전망대는 분명 특별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너무 특별해서’ 찾기 어려운 곳은 아닙니다.
요즘은 방문객도 늘었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종종 보입니다. 하지만 줄을 서야 하거나,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밀려다닐 일은 없습니다.
적당히 사람이 오가고, 적당히 조용한 곳. 공간이 비좁지도 않고, 그렇다고 텅 비어 있지도 않습니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창 너머로 덕수궁을 내려다보는 관광객들.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지만, 그 속에서도 한 걸음 물러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서울 도심 속 작은 쉼표
정동 전망대 내부에는 작은 카페가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자리에 앉으면, 창밖으로 시간이 흐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벽면에는 과거 정동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들이 걸려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내려다보는 이곳이, 한 세기 전에는 어떤 풍경이었을까. 변한 것들과 변하지 않은 것들.
사람들은 달라졌고, 건물들은 바뀌었지만, 그 사이를 흐르는 공기는 그대로일 겁니다.
서울에서, 이렇게 조용한 공간이 있다니
관광지처럼 붐비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도 아닙니다. 정동 전망대는 그 경계 어딘가에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숨 쉴 공간을 찾고 싶다면, 도심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싶다면,
이곳이, 서울의 ‘작은 쉼표’가 되어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