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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오데사 시내를 걸어가다

하루 종일 오는 비에 다 젖었지만 추억해보니 운치 있던 기억

by 타이준

흑해 연안에 위치한 오데사는 휴양도시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휴가철에 제주도를 찾듯 동유럽 사람들은 휴가철에 오데사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데사를 방문했을 때 다른 도시의 겨울보다 상대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출발!


우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내 구경을 했다. 오데사의 시내에는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제법 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좀 괜찮아 보이는 식당을 찾아 아침을 먹었다. 네덜란드 스타일의 식당이라고 하는데 식당 이름부터 `암스테르담`이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비가 오는 오데사의 거리


이곳이 오데사의 중심가다. 이때까지 본 거리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난다. 흡사 독일, 헝가리, 체코에 갔을 때의 거리랑 비슷해 보였다. 서유럽의 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국제도시의 느낌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한동안 눈 때문에 제법 고생했었는데 오데사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난 아침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날 온종일 비가 오다 그치기를 반복하고 있는 좋지 않은 날씨였다. 돌아다닐 때는 비 때문에 고생했지만 나중에 사진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니 나름 운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산을 쓰지 않는 동유럽의 남자들


내가 동유럽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바로 비가 와도 사람들이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남자들은 우산을 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엔간한 빗줄기에도 그냥 옷에 붙은 후드를 덮어쓰거나 비가 많이 내리면 우의를 입었지, 우산을 쓰지 않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내가 처음 찾은 곳은 오데사 시민공원이다. 날씨가 좋을 때는 사람들이 와서 이곳에서 산책하고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아니면 비가 와서인지 모르지만 내가 찾은 시민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데사 시민공원에서 예술가들을 만나다


오데사 공원 한편에는 소련 시절의 가수 겸 영화배우였던 레오니드 우툐소프의 동상이 있다. 우툐소프는 가수이자, 영화배우, MC 등 연예계 여러 방면에서 활동한 종합 연예인이었다. 특히 그는 영화배우와 가수로 유명했다. 그가 발표한 노래의 장르를 살펴보면 탱고, 샹송, 재즈, 댄스, 러시아 전통음악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천재 가수였음을 알 수 있다. 공원에 있는 우툐소프 동상의 코를 만지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오데사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동상의 코를 많이 만진 탓에 코만 빛나고 있다.

그리고 공원 다른 한쪽에는 소련의 유명 작가였던 일리야 일프 와 예브게니 페트로프의 소설 `열두 개의 의자`의 내용을 형상화한 의자가 있다. `열두 개의 의자`라는 소설은 몰락 귀족 보로바니노프와 사기꾼 벤데르가 보물이 숨겨져 있는 열두 개의 의자를 찾으러 소련 곳곳을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다. 그들이 소련 전역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는데 그 만나는 사람을 통해 당시 소련 사회의 모습을 풍자하고 비판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소련 국민에게 큰 인기를 끌어 인기 도서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최고지도자 스탈린이 이를 곱게 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열두 개의 의자`는 소련 정부로부터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금서로 지정되었다. 이런 현실에 일프와 페트로프는 미국으로 망명을 가게 된다. 하지만 미국으로 간 두 작가의 결말은 좋지 않았다. 일프는 37년에 급성 결핵으로 사망, 페트로프는 2차 세계대전 중 비행기 사고로 42년에 사망하였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 기준으로 봐도 소설을 두 명의 작가가 공동으로 만든다는 개념은 생소하다. 그래서 러시아어를 공부하면서 어떤 소설인지 한번 읽어봤던 기억이 났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지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비견되는 풍자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오데사 출신인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렇게 시민공원 한편에 그들의 대표작품을 상징하는 의자가 놓여있다. 예술작품이기도 하지만 관광객들이 직접 앉아볼 수도 있는 의자다. 비가 와서 젖어있지만 뭔가 한번 앉아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충 물기를 닦아내고 한 몇 분간 앉아있다가 왔다.


바쁜 일정에서 한 번씩 찾는 여유 : 도시를 직접 걸어 다니며 느끼고 마음속에 간직하다


도심을 그렇게 한 바퀴 도니 처음 오데사에 도착했던 버스터미널까지 도착했다. 오데사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던 I ♥ ODESSA 간판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오데사 시내를 거닐다 호텔로 돌아왔다. 나는 여행을 가면 하나라도 더 구경하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편이다. 하지만 한 번씩 이렇게 여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에게는 관광지이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삶의 터전인 것이다. 장소, 건물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고 느끼고 돌아오면 다른 곳보다 마음속에 오래 남는 거 같아서 좋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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