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남은 총알 흔적, 탱크 자국…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서울에서 두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철원. 이 조용한 민통선 인근에 지역에 서 있는 한 건물은, 여전히 20세기의 상흔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철원은 작은 도시지만, 전쟁 이전만 하더라도 이 일대는 북한 영토이자 행정의 중심지였습니다. 특히 철원 노동당사는 1946년, 북한 노동당이 철원과 인근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세운 상징적 건물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양식을 빌린 서양식 외관은, 스탈린 시대 사회주의 리얼리즘 건축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의 위엄을 과시하고, 집회와 행정 업무의 실용성을 함께 고려한 구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쟁이 모든 걸 바꾸었습니다.
총탄이 난무하고 탱크가 굴러다니던 전선의 중심, 구 철원읍은 무너졌고, 도시도 사람도 파편처럼 흩어졌습니다.
지금의 노동당사에는 벽면과 기둥, 그리고 벌집처럼 뚫린 총탄 자국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안쪽에는 언제 적었는지 모를 낙서들이 가득했습니다. 아마 이곳을 거쳐간 병사들과 사람들이 적은 글이겠지요.
놀랍게도 당시 철원읍 대부분의 건물들이 사라진 반면, 이 건물만은 기이하게도 외벽의 뼈대라도 남아 버텨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 건물은 단지 옛 사무소가 아니었습니다.
전쟁 중, 북한군이 이곳에서 반공 인사들을 처형했고, 후일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돌며, 철원 노동당사는 '공포의 건물'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현장을 마주했을 때 느낀 감정은 무겁고도 복잡했습니다.
당의 권위를 뽐내려 지어진 건물은 결국 폭력과 인권탄압의 현장이 되었고,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유령처럼 건물의 총탄 자국은 말없이 존재를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었습니다.
건축물로서의 의미, 전쟁의 상처, 그리고 분단의 아픔이 그대로 응축된, 하나의 살아있는 역사 현장이었습니다.
철원 노동당사, 무너질 듯 하지만 여전히 견디고 서 있는 이 건물은, 전쟁과 이념, 그리고 사람의 욕망이 빚어낸 비극의 초상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장소를 마주할 때마다, 과거를 기억해야 할 이유를 되새기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