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기억하는 분단의 모습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지도로만 보면 조용한 산골이지만,
실제로 발을 들이고 나면 대한민국의 끝자락이자 분단의 최전선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번 여행은 양구 통일관에서 시작해 을지전망대, 그리고 마지막에 마주한 펀치볼 전망대로 이어졌습니다.
양구 통일관은 민통선 최북단에 위치한 안보전시관으로 , 제4땅굴, 전쟁기념관, 을지전망대 등으로 이동하기 전 출입신청을 받는 관문 역할을 합니다.
지금은 제 4땅굴은 공사중이라 가 볼수 없고 전쟁기념관과 을지전망대만 관광이 가능합니다.
전시관에는 북한의 생활용품과 수출품, 체제 선전물 등을 전시하고 있어 ‘분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단순한 선전물이 아니라, 남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 차이, 탈북자 수기, 그리고 통일 메시지 등 정보와 정서가 함께 놓인 구성이 인상 깊었습니다.
출입신청을 마친 뒤 여러차량을 따라 대열로 타고 을지전망대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민간인 접근 가능 전망대 중 하나로, 북한과의 거리가 불과 몇백 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전망대 건물은 1층에서 3층까지 이어지며, 안내자의 설명을 따라가며 내부를 차례로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은 단 한 곳, 건물 바깥에 위치한 펀치볼 전망대뿐이었습니다.
그 외의 구역은 전면 촬영 금지였고, 그 덕분에 저는 모든 풍경을 오롯이 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전망대와 초소 사진은 AI생성 이미지로 대체했습니다.
몇백 미터 앞의 현실, 군사분계선의 풍경
전망대 3층에 올라서자, 안내인이 손가락으로 저 멀리 북쪽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보이시죠? 저기가 북한군 초소입니다. 여기서 몇백 미터밖에 안 됩니다.”
군사분계선 남북으로의 좁은 공간.
원래는 남북이 군사분계선에서 각자 일정 거리만큼 물러나 완충지대를 형성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북한이 초소를 점차 전진 배치하자 우리 측도 대응했고, 결국 지금의 을지전망대 위치까지 올라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설명을 듣다 보니, 북한과의 팽팽한 심리전이
지형과 고지 이름에서도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안내 해설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고지, 북한이 예전에는 ‘김일성 고지’라고 불렀습니다.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고 했던 상징이죠.
하지만 결국 우리 군이 탈환했고, 북한은 다시 뒤쪽에 또 하나의 ‘김일성 고지’를 세웠습니다.
지금은 서로 마주보는 김일성 고지가 존재하는 셈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이 땅은 체제의 체면과 상징, 권력의 의미가 얽힌 장소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가벼운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과거 북한군은 전망대에서 보이는 폭포 근처에서 여군들을 일부러 노출시켜 목욕을 시키는 방식으로 심리전을 벌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응해 우리 측도 이 펀치볼 고지에서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를 실제로 진행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1992년 미스코리아 미를 수상한 사람이 텔런트 이승연 이라고 하더군요.
웃어야 할지 씁쓸해야 할지 모를 이야기였지만, 그조차도 전쟁이 사람의 정신과 감정까지 건드렸다는 기묘한 시대의 기록처럼 느껴졌습니다.
을지전망대 내부를 모두 둘러본 뒤, 건물 밖으로 나와 마지막으로 펀치볼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여기서만은 사진 촬영이 허용되었고, 그 덕분에 저는 긴장을 조금 내려놓은 채 시야를 탁 트고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펀치볼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으로,
멀리서 내려다보니 왜 미군이 이곳을 화채그릇 ‘펀치볼(Punch Bowl)’이라 불렀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습니다.
마치 누군가 땅을 주먹으로 움푹 찍어낸 듯한 지형.
지금은 평화롭게 보였지만,
전쟁 당시 이 지형은 치열한 포격과 고지 쟁탈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은 그저 기념 이상의 의미를 남겼습니다.
단 한 컷의 이미지 안에 분단의 현재와 기억의 풍경이 함께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구 통일관에서 시작된 여정은 을지전망대의 차가운 공기와 군사 설명을 지나,
펀치볼 전망대의 고요한 풍경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사진을 거의 찍지 못한 여정이었지만,
그 대신 저는 오랜만에 ‘눈으로 기억하는 여행’을 했습니다.
몇백 미터 앞에서 마주한 현실은, 그 어떤 기록보다 더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그리고 끝나지 않은 마음의 거리.
그 경계선 위에서 저는, 잠시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