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간절곶에서 동쪽의 끝을 바라보다
울산 간절곶에서 동쪽의 끝을 바라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러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너무 많고, 한겨울의 해변은 너무 춥습니다.
두꺼운 옷을 껴입어도 바닷바람은 틈을 비집고 스며들고, 그 상태로 몇 시간을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는 건 저에게는 무척 고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해가 떠오른다고 해서, 제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해돋이 명소’라는 말에는 항상 반신반의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간절곶’이라는 지명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간절욱조 조반도(艮絶旭肇早半島)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비로소 아침이 온다.”
울산 울주군에 있는 간절곶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문장은 바로 그 의미를 상징적으로 풀어낸 구절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한자에 익숙하지 않다면, ‘간절하다’는 감정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언뜻 떠오른 건 일출보다도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곳은, 단순히 해가 떠오르는 장소가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이들의 ‘간절함’이 모이는 곳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대낮의 간절곶, 그리고 그 바람
제가 간절곶을 찾은 시간은 일출과는 거리가 먼 대낮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의 풍경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탁 트인 동해바다는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고, 드넓은 언덕 위로 맑은 하늘이 보입니다.
높지도 가파르지도 않은 초원 언덕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쉼터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간절곶에 깃든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바다를 향해 서 있는 거대한 소망우체통,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박제상의 부인과 딸의 조각상, 멀리 일본이 보일 듯 말 듯 떠 있는 지평선까지.
그 하나하나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동쪽의 끝에서, 서쪽을 보다
간절곶에서 뜻밖의 상징물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유럽 대륙의 서쪽 끝, 포르투갈의 호카곶 기념비 모형이었습니다.
그 위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ÇA.
간절곶은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아시아의 동쪽 끝, 호카곶은 해가 가장 늦게 지는 유럽의 서쪽 끝.
두 대륙의 끝자락이, 이렇게 상징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유럽의 해넘이를 보러, 진짜 포르투갈의 호카곶에도 가보고 싶다.”
결국 해는 매일 떠오릅니다.
하지만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간절곶에서 배운 ‘시작의 온도’ 간절곶은 저에게 그런 곳이었습니다.
일출을 보지 않았지만, 조용히 시작을 다시 정리할 수 있었고 아무런 약속도 없는 하루에 작은 다짐 하나를 새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해돋이를 본다고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맞이한 찰나의 풍경은 스스로를 조금 더 아끼고, 다잡고, 믿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그리고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나에게도 하루가 시작될 수 있음을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