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 감히 말하지 못한 여성들의 이야기
매해 10월이 되면 전 세계의 이목은 스웨덴과 노르웨이로 향한다. 현재 지구상의 최고 권위의 상이라고 할 수 있는 `노벨상`의 수상자들이 발표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것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누군가 수상할만한 한국인이 없을지 예측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은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로 어떠한 수상자도 나오고 있지 않다. (2022년 기준) 그럴 때마다 각종 매체에서 왜 한국은 노벨상을 받지 못할까 하는 분석들이 쏟아진다. 이러한 모습은 매해 빠지지 않고 연례행사처럼 되고 있다. 나도 그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다른 매체에서 나온 글만 읽어보고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러다가 요즘 그런 의문만 갖지 말고 과연 노벨상을 받은 작품들은 어떤지 한번 알아보고자 했다. 그러다가 예전에 러시아어를 공부하면서 제목만 보고 넘어갔던 책이 눈에 띄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일지 대충 예상이 되었다. 아마 전쟁에 참전했던 여군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 기준으로써 그렇게 참신한 주제의 책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노벨상을 받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이 책의 제목에 담긴 의미부터 말하고 싶다. 한글이 아닌 러시아어 원제를 본 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У войны не женское лицо라고 적혀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제목은 달랐다. 나 같으면У войны нет женского лица라고 썼을 텐데 말이다. (뜻은 같지만, 문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는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 그래서 이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러시아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어보았다. 친구가 말하기를 내가 쓴 문장도 맞지만, 작가는 다른 뉘앙스로 말하고자 제목을 그렇게 지은 거 같다고 했다. 내가 쓴 문장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고 끝내버린다. 더 이상의 다른 의문이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쓴 제목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이 없다 다른 얼굴이 있다." 이런 느낌이라고 한다. 친구의 말을 듣고 되돌아보니 작가가 제목도 정말 신경을 써서 지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작품은 벨라루스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여군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들이 그대로 담겨있다. 글의 주된 내용들은 내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선 책의 본격적인 이야기 전에 작가가 이 책을 내기까지 겪었던 어려운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책을 처음으로 출판한 시기는 1985년 벨라루스가 소련의 구성국일 때였다. 당시 이 책을 출간하기 전 숱하게 검열당한 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 당시 소련의 담당자와 작가가 했던 면담 내용 또한 담겨있었다. 소련 해체 후 2002년에 검열된 부분까지 전부 복원하여 재출간되었는데 이 작품이 세상에 온전하게 나온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셈이다.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 겪었던 이야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그녀가 인터뷰한 수백 명의 참전 여군들의 증언이 시작된다. 나는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저격 중대 위생 사관이었던 올가 야코블레브나 오멜첸코의 증언이다.
전쟁터에서는 사람의 영혼마저 늙어버리지. 전쟁이 끝나고 나는 다시는 젊음으로 돌아갈 수 없었어.
[본문 267p 중]
대다수 사람은 군 복무나 전쟁은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군대에서 영광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하더라도 군대에 대한 기억은 좋을 수가 없다. 군대는 본질적으로 폭력을 다루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증언했던 올가 오멜첸코의 증언도 끔찍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위생 사관으로 전쟁에 참전하여 겪었던 일에 대해서 작가에게 털어놓았다. 그녀가 증언한 내용에는 끔찍하지 않은 일이 거의 없다. 탈영병을 즉결처분해야 하는데 사람이 모자라 간호 업무를 하던 그녀가 직접 기관총을 가지고 탈영병을 쏴 죽인 사건, 전투 중에 팔이 찢겨나간 병사를 간호한 일, 자신을 짝사랑하던 중대장의 사랑 고백을 거절했는데 다음 전투에서 그의 전사 소식을 듣고 느낀 죄책감 등등. 내가 겪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감당이 안 되는 증언들이었다. 스무 살의 그녀는 전쟁터에서 너무 끔찍한 일을 겪었다.
그녀는 자신의 영혼이 부서졌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영혼이 늙어버린 것이라 표현하였다. 왜 그녀는 그렇게 말했을까? 그녀는 전쟁이 끝나고 결혼해서 아이 넷의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그런 끔찍한 일을 겪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전쟁 후에 그녀도 적어도 겉으로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어서 그렇게 표현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영혼이 부서진 것이 아니라 늙은 것이라고 한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서야 그녀가 과거의 일들을 담담하게 말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의 악몽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이 든다. 그녀가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더 큰 영혼의 상처를 받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여군들의 이야기를 읽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들의 증언을 듣고 남자인 나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여성이었기에 남자들이 보지 못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올가 오멜첸코의 증언은 내가 남자인 내가 봐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여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이 감춰져 있다. 하지만 여자들이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원치 않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선물하는 존재. 여자는 오랫동안 자신 안에 생명을 품고, 또 생명을 낳아 기른다. 나는 여자에게는 죽는 것보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가혹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본문 29p 중]
만약 내가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내가 죽인 적군의 시신을 보게 된다면 어떨지 한번 상상해 보았다. 적군 아군을 떠나서 우선 그런 상황이라면 인간적인 연민이 들것이다. "적군이지만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 "단지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 서로 만난 것이 불행이었건 것이다." 정도로 생각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전쟁을 겪은 여성들의 생각이 여기서 생각이 그치지 않았다. 여성은 자기 몸 안에 생명을 품고 기를 수 있는 존재이다. 비록 내가 낳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힘들게 낳고 기르고 했던 생명이 끔찍하게 죽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하지만 그들의 그런 고통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억눌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겪은 여자들을 싫어하는 주변의 시선 그리고 위대한 전쟁의 승리에서 나약함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소련 당국의 검열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감춰져 있었다.
작가는 이런 사실이 안타까워 당시 여군들을 찾아가 인터뷰했고 수백 명의 증언을 비로소 이 책 속에 담아낼 수 있었다. 커다란 역사의 줄기뿐만 아니라 잘 알지 못하는 숨겨진 이야기 또한 소중한 역사이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수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