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독일마을, 그리움이 마을이 된 곳에서
외국에서 산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고된 일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고, 음식 하나 주문하는 것도 모험이 되고, 때로는 작은 오해 하나가 깊은 외로움과 슬픔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너무도 간단한 일들이, 낯선 땅에서는 커다란 도전이 됩니다.
은행 카드 하나 만드는 일, 우편을 보내는 일. 한국에선 당연했던 일들이 언어와 제도의 벽 앞에 멈춰 섭니다.
요즘이야 번역기 덕분에 그나마 수월해졌다고 하지만, 그 시절엔 모든 걸 몸으로 부딪치며 배워야 했습니다.
그 과정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 겁니다.
외국에서 버틴다는 건, 매일을 새로 시작하는 일이라는 것을요.
반세기 전, 1960~70년대 한국의 젊은이들은
그 낯선 땅으로 ‘도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떠났습니다.
누군가는 독일의 병원으로, 누군가는 깊은 광산으로.
그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눈물을 삼키며, 가족에게 보낼 돈을 모았습니다.
그들의 송금이 가난한 조국의 숨을 이어주었고, 그들의 젊음은 한국 경제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이 남해 독일마을의 시작은 의외로 잔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990년대 말, 남해군이 독일 북부 도시 노르트프리슬란트(Nordfriesland)와
잔디 수입을 위한 자매결연을 추진하던 중, 현지 파독 근로자들 가운데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할 마을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침 남해군의 한 고위 공무원이 자신의 형제가 독일에서 파독 근로자로 일하다 귀국했던 일을 떠올렸고, 그 인연이 계기가 되어 남해에 정착마을을 조성하자는 결심이 섰습니다.
그 소박한 바람이, 남해의 바다 언덕 위에 한마을을 세우게 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2000년, 남해군은 독일 현지에서 교민들을 대상으로 투자설명회를 열었고
이듬해 물건리 일대에 부지를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첫 삽을 뜨며 다섯 채의 집이 세워졌습니다.
그렇게 그리움은 형태를 갖춘 집이 되었고, 독일마을 단지 조성 공사는 완성되었습니다.
하얀 벽과 붉은 지붕의 주택들이 언덕을 따라 줄지어 서 있습니다.
건축 자재는 독일에서 직접 들여왔고, 지붕의 경사와 창문 하나까지도 독일의 시골 마을을 닮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연을 알고 걷다 보면 “여기가 정말 한국일까?” 하는 착각이 들 만큼, 공기 속에 이국의 정취가 묻어납니다.
하지만 이곳의 향기는 단순한 유럽 감성이 아닙니다.
골목마다 풍기는 소시지와 맥주의 냄새 뒤에는 이민의 세월, 그리고 그리움의 냄새가 숨어 있습니다.
그 수많은 그리움들이 모여 이 마을을 완성시켰습니다.
마을 중앙에는 ‘파독 근로자 전시관’이 있습니다.
입구는 마치 공항의 출국 게이트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비행기 수속 카운터와 탑승구 모형이 보이죠.
처음엔 여행을 떠나는 듯한 설렘이 들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공기의 온도가 달라집니다.
광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장비,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간호사들의 일기, 낡은 트렁크와 손때 묻은 작업복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떠나던 날의 대한민국을 기억하고, 우리는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떠나보내던 그 이별의 순간을 상상하게 됩니다.
그때 문득 깨닫게 됩니다. 이 길은 여행이 아니라, 희생의 여정이었다는 것을요.
언덕을 내려오다 보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추는 곳이 있습니다.
드라마 〈환상의 커플〉 속 ‘철수네 집’입니다.
마을 중심 길가에서 약간 빗겨난 내리막길, 기억을 잃은 나상실이 장철수에게 속아 함께 살던 바로 그 건물입니다.
드라마가 방영된 지 어느덧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 장면을 떠올리며 이곳을 찾습니다.
이 집에는 실제로 한때 파독 간호사분이 거주하셨고, 그분은 12년 전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외관이 조금 달라졌지만, 입구의 간판만 보면 금세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도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니,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조용히 바라보는 예의가 필요합니다.
붉은 지붕 위로 햇살이 내려앉고, 멀리 남해 바다가 반짝입니다.
이 바다는 누군가에게는 ‘귀향’이고, 누군가에게는 젊은 날의 끝에서 다시 찾은 두 번째 고향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돌아왔고, 그리움은 마을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이별이 오늘의 귀향으로 바뀐 자리, 그곳이 바로 남해 독일마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