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러 종교에 관심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신이 존재하되 인간사에 깊게 개입하지 않는다고 믿는 이신론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신념에 기대어 더 나은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다면, 그 믿음은 종교의 이름을 넘어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지리산 자락의 고찰 화엄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연 속에서 세상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진정한 평화를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리산의 바람은 고요했고, 절집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습니다. 그 느림 속에서 마음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습니다.
절로 오르는 길은 고요했습니다.
따가운 햇살이 나무 사이로 스며들고, 돌담 사이엔 오래된 이끼가 눌러앉아 있었습니다.
이곳은 신라 진흥왕 시대, 인도에서 건너온 연기조사가 세운 절입니다.
그는 신라에 대승불교를 전한 인물이자, 진흥왕의 신임을 받았던 고승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연기조사는 어머니를 모시며 절을 세웠다는 전설입니다.
흔히 승려라 하면 가족을 버리고 세속을 끊는 존재로 여기지만, 그는 수행의 출발을 효도에서 찾았습니다.
화엄사에 전해지는 돌상 중 하나는, 연기조사가 어머니를 등에 업은 모습이라 전해집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절이라는 공간이 신앙의 터전인 동시에 사랑과 그리움이 쌓여 만들어진 인간의 이야기임을 느꼈습니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에 각황전 앞 석등이 있어야 했지만, 보존 처리 중이라 비어 있었습니다.
처음엔 아쉬웠지만, 그 빈자리 덕분에 절의 침묵이 오히려 더 깊게 다가왔습니다.
바람 소리, 종소리, 돌계단 위의 햇살이 그 여백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기운 이곳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템플스테이 첫날, 공양간으로 향하던 중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TV와 인터넷에서 이름이 알려진 ‘꽃 스님’이 식당 쪽으로 걸어오자 여성 신도들이 마치 아이돌을 본 듯 환호를 질렀습니다.
순간 웃음이 났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 스님은 아마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혹독한 수행의 무게를 견디며 대중의 시선까지 감당해야 할 겁니다.
화려한 관심 속에서도 고요함을 지킨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저녁에는 한 스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출가 전 세속에서의 일을 담담히 이야기하더니,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수행의 자리입니다. 남에게 아쉬운 말 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설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그게 돈이든, 기술이든, 마음의 근력이든.”
그 말은 산속에서 나름대로 삶의 무게를 견뎌온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우리는 수행자니까 오롯이 자신만 챙기면 됩니다. 하지만 가정을 이루고, 부모가 되어 남을 돌보는 사람들은 수행자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이들이지요.”
그 말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산속의 침묵보다 더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수행이 꼭 절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버티는 일상 속에서도 수행은 이어진다는 깨달음이 스쳤습니다.
템플스테이를 하면 좋은 점 중 하나는, 밤의 산사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은은하게 조명이 켜진 절을 천천히 거닐며 명상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 달빛이 스치는 전각의 그림자,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염불 소리까지 모든 것이 세속과 단절된 또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만, 템플스테이를 할 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스님이나 직원의 안내에 따라 시간을 잘 지키고, 그들의 수행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우리가 잠시 머무는 이 공간은 누군가의 ‘삶터’이자 ‘수행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예의를 지키는 순간, 비로소 산사의 고요함이 우리에게도 스며듭니다.
밤이 깊어 절을 나설 즈음, 달빛이 절 전체에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사람하나 안보이지만 비어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수행이란 어쩌면 잃은 자리를 지키는 연습인지도 모릅니다.
신이 인간사를 세세히 돌보지 않는다 해도, 사람은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할 수 있습니다.
화엄사는 그런 고요한 단련의 시간을 허락하는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