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라진 궁궐, 남은 탑 하나 : 익산 왕궁리 유적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백제의 시간

by 타이준

바람이 넓은 평원을 가로질러 불어옵니다.

멀리 산자락이 흐릿하게 보이고, 그 아래로는 고요한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언뜻 보면 평범한 농촌 마을 같지만, 이곳이 한때 백제의 왕궁이 있었던 자리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KakaoTalk_20251024_135936512.jpg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01.jpg

흔히 백제는 ‘잊힌 왕국’이라 불립니다.

고구려의 기상과 신라의 통일 서사에 가려, 백제의 이름은 교과서 속에서도 조용히 지나갑니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빈틈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드러냅니다.

그 빈틈을 메우는 실마리가 바로 이곳, 익산 왕궁리 유적에 있습니다.

왕궁리 유적 입구에 있는 백제왕궁박물관을 먼저 찾았습니다.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02.jpg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03.jpg

입구에는 ‘왕궁에 담긴 백제 중흥의 꿈’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안으로 들어서자 발굴 당시의 사진과 수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토기, 기와, 금동 장신구, 청자 파편, 송풍관까지 당시의 기술과 생활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유리 진열장 앞에서 유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화재 해설사 어르신이 다가와 말을 건넸습니다.

“보통은 백제의 수도를 위례성, 웅진, 사비로만 알고 있지요. 그런데 사실 익산도 그 줄기에 들어가야 합니다.”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06.jpg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04.jpg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07.jpg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05.jpg

그는 계속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이 일대에서 나온 유물들을 보면, 금·은 세공품, 정교한 수로 체계, 계획적인 석축 구조가 있습니다. 단순한 별궁이 아닙니다. 분명 정치 중심의 기능을 했던 자리지요.”


전시된 장신구의 세공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했습니다.

작은 금실 하나에도 백제인의 기술과 미감이 살아 있었죠.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10.jpg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08.jpg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11.jpg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12.jpg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09.jpg

어르신이 말했습니다.

“이 정도의 장식과 공예 기술을 가진 곳이라면, 당시 익산이 상당한 경제력과 권력을 갖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그 순간, 유리장 너머의 금빛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한 왕국의 무게처럼 느껴졌습니다.


유적지로 나가니, 들판 한가운데 오층석탑이 서 있었습니다.

사방이 텅 비었는데도, 그 자태는 묘하게 단단했습니다.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14.jpg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13.jpg

백제의 왕궁이 사라지고, 그 위에 사찰이 세워졌다가 다시 폐허가 된 자리.

그 모든 시간을 버텨낸 건 이 탑뿐이었습니다.

탑 주변을 걸으며 발굴지의 안내문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장방형의 석축, 배수로, 정원터, 후원의 흔적이 꼼꼼히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물길을 설계하고 정원을 조성한 흔적을 보면,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철저히 계획된 궁성이었다는 점이 분명했습니다.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15.jpg

화려한 전각은 사라졌지만, 그 기초를 이루던 토목 구조와 수리 기술이 오히려 당시의 국력을 보여줍니다.

땅 아래에 남은 백제의 흔적은, 이미 사라진 왕국이 여전히 이곳에 존재함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탑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누군가는 이 자리에 궁궐을, 또 누군가는 사찰을 세웠습니다.

왕의 의지와 신앙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자리.

허물어진 뒤에야 속살을 드러낸 유적의 역설이 떠올랐습니다.

사라져야 보이는 것들, 왕궁리의 풍경이 바로 그랬습니다.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16.jpg
KakaoTalk_20251024_135936512_17.jpg

문헌이 침묵한 자리에서도, 땅은 여전히 말을 합니다.

그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오래된 시간의 그림자가 천천히 모양을 드러냅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역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의 고대사를 연구하려면 뛰어난 상상력이 필요하다. 아직 명확히 밝혀진 사실도 적고, 남은 문헌도 많지 않기 때문이지. 그 빈틈을 메우는 건 결국 연구자의 상상력이다.”


그 말이 그때는 막연하게 들렸지만,

오늘 익산의 들판 위를 걸으며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발굴된 흙 속의 금속 조각, 무너진 돌의 각도, 남은 물길의 방향 그 사이에 잊힌 왕국의 이야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완성된 역사는 아니지만, 그 빈칸을 상상하며 걸을 때, 비로소 백제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꿈을 그린 화가 : 안견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