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3)
몇 달 전에 제가 갤럭시와 양배추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8e1c734a3dbc4e2/89
그 글에서 안타깝게도 '흑우'인 저는 최고의 성능이라고 광고하는 폰을 샀죠. 그런데 그 핸드폰은 그 최고의 성능을 다 쓸 수 없었습니다. 어이없게도 그 최고 성능을 사용하면 기계의 안정성이나 수명을 보장할 수 없었다는 거죠. 즉, 순간적인 최고 스펙이 거기라는 것이지 지속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래도 스마트폰의 수명주기상 최소 2년을 봐야 한다는 기준에서 버틸 수 있도록 '제한'을 걸었다는 것이었죠. 삼성이 억울해하는 것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다들 그러니까요. 그런데 그 '다들'이 싫으니까 우리는 '브랜드'를 믿는 것 아닌가요? 대체 우리는 무엇을 믿는 걸까요?
저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 집에는 'KENWOOD(켄우드)'라는 일제 오디오가 있었습니다. 사우디에 건설 근로자로 파견 갔던 작은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께 선물로 갖고 온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엄청나게 고가품이었기에 입국할 때마다 한 파트씩 들고 와서 결국 2년여 만에 오디오를 완성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듣기에도 엄청나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오디오였습니다. 아버지와 나이차가 많아서 거의 아버지 손에 크다시피 했던 작은 아버지는 그 뒤에도 아버지께 여러 가지 음향장비를 갖고 왔습니다.
아버지가 가장 자랑하시는 부분은 고출력의 스피커였습니다. 양쪽 300w에 달하는 스피커라며 매우 흡족해하셨죠. 당시에 우리 집은 산속에 있어서 정말 집이 붕붕 울릴 정도로 틀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이사하고 나서 아버지가 제일 아쉬워하던 부분 중 하나였죠. 그래서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이게 300w의 소리라며 들려주신 소리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주 크고 귀가 먹먹해지는 소리였죠.
위에서는 제가 간단하게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을 했지만 꽤 오래 아마추어 밴드 활동을 했습니다. 공연도 많이 했죠. 합주실의 메인 스피커는 공연용으로 제작된 스피커였습니다. 일단 스피커는 역시 크기가 깡패라는 말이 있듯이, 커스텀으로 제작된 제 키보다 조금 작은 길쭉한 스피커에서는 상당히 깊이 있는 소리가 났습니다. 나중에 찾아봤는데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수제로 제작한 스피커더군요. 제 기억이 맞다면 양쪽 합쳐서 700W 정도 됐을 겁니다. 지금은 JBL의 스피커를 메인으로 바꿔서 없어져버린 탓에 사실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그런데 어느 기점으로 버스킹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풀 밴드가 공연할 자리가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컬인 제 입장에서야 솔직히 MR만 들고 길거리 나가면 버스킹 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밴드의 공연은 그게 아니니까요. 그때 즈음해서 학교에서 보컬 강의를 할 일이 있어서 나름대로 장비를 갖췄습니다. 버스킹용 앰프를 산 것이죠. 여러분들이 길거리에서 많이 보게 되는 스트릿 큐브... 를 사려다가 조금 더 어쿠스틱 톤에 맞는 다른 앰프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여러분들이 버스킹에서 가장 많이 보게 되는 스트릿 큐브, 심지어 EX 버전이다 하더라도 최대 출력이 50W입니다. 그전에 버스킹 초기에 쓰이던 기본 버전은 최대출력 30W-40W 앰프가 대부분이었죠. 심지어 정격출력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아서 5W나 10W 짜리라는 거죠. 아니 집에서 듣는 스피커의 출력이 300W인데 야외에서 공연하는 앰프 스피커가 고작?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심지어 요새 많이 듣는 블루투스 스피커들. 보통 스펙 보면 저렴한 것도 30W에 조금 비싼 제품은 50W 100W를 찍습니다. 그럼 그 공연용 앰프들은 그런 조그만 스피커만도 못하다는 걸까요?
저 역시 스피커를 살 때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북쉘프 스피커를 하나 사더라도 출력을 고려하지 않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버스킹용으로 샀던 스피커가 30W를 낸다는 조그만 블루투스 스피커만큼의 출력이라고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체감으로도 그랬죠. 물론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스피커는 크기가 깡패인 지점이 있기도 하지만 그걸 제하더라도 그랬습니다.
블루투스 스피커들이 50W 100W를 찍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4개의 유닛으로 구성된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다고 해보죠. 풀레인지(조금 더 크고 전 음역을 다 소화하는 스피커) 두 개에 트위터(고음 영역을 소화하는 스피커) 두 개 정도라고 했을 때 각각 최대 출력이 30W 30W 20W 20W면 100W가 나옵니다. 아주 간단하죠? 그럼 과연 이렇게 이뤄진 100W는 우리가 생각하는 100W의 소리가 나올까요?
일단 그 스피커의 스펙상으로, 그것도 최대로 '낼 수 있는 소리'가 그렇다는 이야기지 그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찢어지거나 디스토션이 걸린 소리가 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데 보통 블루투스 스피커 아무리 키워도 그런 일 없죠? 그럼 문제없는 거 아니냐? 아닙니다. 제가 처음에 공연용 스피커를 이야기하면서 '앰프 내장형 스피커'라고 말했죠. 그 이유는 결국 스피커에는 그 출력을 전달할 앰프가 어느 정도 감당하느냐에서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스피커에 연결된 회로가 100W만큼의 출력을 공급해줘야 100W의 소리가 난다는 거죠.
그래서 공연장이나 합주실 같은 곳은 '콘솔박스'에 '앰프', '이퀄라이저' 등등을 따로 연결하고 거기에 스피커를 물려서 씁니다. 앰프가 출력이 더 커버리면 스피커가 터져나갈 수도 있고, 앰프가 출력이 더 작으면 스피커는 제 성능을 못쓴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대부분의 저렴하면서 고 스펙인 스피커들은 실제 나올 수 있는 출력은 반도 될까 말까 하더라도 '그중 일부가 가질 수 있는 최대 스펙'을 표기함으로써 최고 스펙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적어도 스펙 상으로는 공연용 스트릿 스피커 보다도 더 큰 출력을 가진 조그맣고 저렴한 스피커들이 많이 나오는 겁니다.
위에 언급한 스트릿 큐브 ex는 앰프 일체형이라 출력은 정확합니다. 25W 25W 스테레오 출력으로 50W가 나옵니다. 8인치 우퍼 2개에 2인치 트위터 2개가 들어있지만 최대출력으로 50W를 낼 수 있는 거죠. 소리는 여러분들이 길에서 버스킹을 만나봤다면 거의 들어봤을 거라고 봅니다. 거기다 사실 여러분이 만난 큐브 스트리트가 ex가 아닌 1이나 2라면 정격출력(최대출력이 아닙니다) 5W나 10W밖에 안 되는 소리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들어보셨던 소리가 집에 있는 5W나 10W 블루투스 스피커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사실 스피커에 대해서 더 전문적으로 파고들면 저도 정확히 아는 바가 얕아서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적어도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최대출력'들은 '거짓'은 아니더라도 '거짓'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예시로 우리가 믿기 어려운 수치가 또 있는데 빔프로젝터의 '루멘'이죠. 빔프로젝터를 고를 때 두 가지 단위가 있는데 '루멘'과 '안시'라는 단위가 있습니다. 어딘가는 루멘으로, 어딘가는 안시로 표기를 하는데 누구나 자신들에게 조금 더 유리한 단위로 표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 측정값을 정확히 어느 정도 위치에서 어떻게 측정하라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절대 비교를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단순히 그 수치만 보고 밝기를 짐작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빔 프로젝터를 사는 사람들은 그냥 수치로는 믿을 수가 없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나 사용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요새는 '광고형 블로거나 유튜버'들보다 많은 정보가 존재하는 시대라서 너무 어렵지 않게 비교한 자료를 찾을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결국 그러한 수고스러움은 소비자의 몫이 됩니다. 믿을 수 없는 정보 때문이죠.
스피커와 빔프로젝터를 예로 들었지만, 실제로 최고 스펙으로 가장 사기를 많이 치는 건 사람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저만 하더라도 약간 그런 성향이 있다는 걸 느끼죠. 제가 완전하게 할 수 있는 것만 이야기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되니까요. 사람의 배움은 끝이 없다 보니 완전하게 안다는 것 자체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관심이 있고 얄팍하게 알더라도 언급하게 됩니다. 인사담당관들이 머리를 감싸 쥐는 가장 큰 원인이죠.
그래서 자격증이나 경력을 보게 되는데, 그게 오히려 최고스펙의 가장 큰 함정입니다. 대기업, 공기관, 공기업 이런 곳에서 근무했던 스펙이나 좋은 학벌을 보고 뽑아도 꽝일 가능성은 상당히 높습니다. 마치 스피커처럼 말이죠. 그런 유닛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지 그런 출력을 밀어줄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경력이 화려해도 그게 거기서 뭘 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결국 핵심은 사람 그 자체입니다.
심지어 포트폴리오를 보는 것조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가 취업에 관심이 많다 보니 취업을 위한 학원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학원들은 '기술'을 가르치는데, 그 기술이 정확하게 '포트폴리오만' 만드는 기술일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딱 괜찮아 보이게 만드는 그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까지만 배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단 취업을 하고 나면 상관없다는 거죠. 그 뒤에는 회사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요.
결국 사기를 안 당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얼마나 적게 당하냐의 문제겠죠. 그리고 얼마나 그걸 피하거나 간파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정보를 모으게 되는데, 그 정보를 얼마나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에서 다시 한번 기로에 섭니다. 사기를 피하기 위한 정보를 모으는데 그 정보의 사기를 또 피해야 한다는 이중고에 시달립니다. 맛집 한 번 고르려면 '돈 받은 광고 블로거'를 거르고 진실로 된 블로그를 찾기 위해서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꽃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그 아름다움은 아마도 꽃이 "가장 아름다워 보였던 순간"일 것입니다. 그게 그 꽃의 최대 스펙인 것이죠. 하지만 꽃집에서 꽃을 샀을 때 그 최고로 아름다운 순간과 동일하지 않다고 해서 실망하게 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 꽃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때문에 그 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거죠. 색깔, 모양 뭐든 그 최고의 순간과 다르더라도 아름다움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최고의 순간을 보는 게 아니라 '오래 보아도 좋은 것인지'가 핵심일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것이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최고를 운운하는 문구와 자극에 너무 쉽게 반응해버립니다. 그래서 사람이기도 합니다.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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