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병원 일기 (입원 9일 차)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지는 인도 병원 생활

by 김보성 Celeste

인도 북부 데라 둔 병원에 입원한 것도 벌써 9일 차가 되었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어떻게 무료함을 이겨 낼 지에 대한 걱정도 만만치 않았는데, 벌써 9일 차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통증

사실 발목을 접질리고 가장 아팠던 건 사고 직후와, 병원까지 도착하기 위해 견뎌야 했던 약 34시간의 시간 동안이었다. 한쪽 발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말을 타야 했던 것, 한 발로 계단을

오르고 멀리 떨어진 화장실을 갔던 것, 서양식 화장실이 없는 거리를 10시간 동안 견뎌내어야 했던 200킬로의 구불구불한 거리는 솔직히 오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다.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수술을 마치고, 실제 통증은 느낀 건

순간순간에 불과했다. 입원 초반엔 실제로 느껴지는 통증보다, 통증이 올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육체적인 통증이 되었건 정신적인 고통이 되었건, 굳이 당겨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무료함을 이겨 내는 법

발목 골절 수술 후 2주간은 무조건 휴식해야 하는 기간이라고 하기에, 깨어 있는 대부분을 침대 위에서 보내고 있다. 평소에

집에만 있어도 한 곳에 오래 앉아있는 걸 못 참아하는 나인데, 지금까지 병원 방을 나가지도 않고 지내고 있는지,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인 것인가.

내가 크게 무료하지 않고 병원 생활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워낙 정이 많은 인도 병원 식구들 때문일 것이다. 병원에서 사무적인 이야기만 나눴다면 어땠을까? 효율적이고 시간관념이 확실한 독일 같은 나라에서 입원을 했다면, 병원 독실 생활은 꽤나 조용했겠지만 꽤 무료했을 것이다.

물론 독서나 명상을 통해 어쨌건 무료함을 이겨내긴 했을 것 같지만 지금 같은 생활은 아니었겠지.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지는 인도 병원

오늘은 입원 후 처음으로 샤워를 했다는 뜻깊은 날이자, 인도사람들의 온기를 듬뿍 느낄 수 있었던 날이었다. 어제 아침으로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있는지 영양사가 물어봐서, 인도에서 먹은 다양한 아침 메뉴를 이야기하다 메티 파라타

(Methi Paratha) 얘기가 나왔다. 메티 파라타는 통밀 반죽에 메티(호로초 - fenugreek) 잎을 잔뜩 넣어 만든, 차파티/로티 보다 좀 더 두껍게 만들어 낸 펜 케이크 같은 음식이다. 자이푸르 인도 가족과 지낼 때, 한 번 만들어본 기억이 있어서 다시 한번 먹고 싶었던 메뉴.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생각해서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으로 메티 파라타를 받았다!

강황가루가 들어가 더 맛있었던 초대형 사이즈 메티 파라타

깜짝 아침으로 시작된 즐거운 하루,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일요일이라 일이 적었던 병원 관리 매니저 마양크가 오전 11시쯤 되니, 인도 길거리 음식의 대표적 메뉴인 사모사와 후식 메뉴 라스 말라이 (Ras Malai - 말라이는 힌디어로 크림이라는 뜻)를 사서 내 방으로 놀러왔다. 방금 근처 식당에서 사 와서 아직도 따뜻했던 사모사가 마양크의 마음처럼 느껴져 더욱 맛있었다 (민트 처트니와 타마린드 처트니까지 포장해 와서 더욱 맛있었던 것도 있었음). 특히 내가 혼자 먹지 않도록 사모사 두 개를 사 와서 같이 먹어준 마양의 배려가 따뜻했다.


으깬 감자와 완두콩으로 속을 채운 사모사


오후 1시 정도가 되니, 인제는 친구처럼 느껴지는 디피카 (빛이라는 의미) 간호사에게 쪽지가 와서는 병원 점심을 먹지 말라고 했다. 일주일에 하루 밖에 쉬지 않는데, 그날을 이용해서 내가 먹고 싶어 했던 믹스 베지 커리와 강낭콩 (힌디어로 Rajma)커리를 만들어서 병원으로 가져온다는 거다.

디피카가 만든 정성이 가득해서 더욱 더 맛있었던 야채 커리와 강낭콩 커리, 거기에 튀긴 로티인 푸리까지!

디피카가 만들어준 음식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었다. 한 입 한 입을 음미하며 이 친구의 정을 고스란히 전달받았다.


평소에 좋아하는 친구들을 불러 음식을 통해 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음식은 특별한 존재다. 모르는 사람과도 음식을 나누게 되면 친근함이 뭉긋 뭉긋 생겨난다.


병원입원 전에는 적어도 5년 동안은 절대 인도에 오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했던 나였지만, 병원에서 알게 된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조만간 다시 오고 싶어진 이곳, 인도.


다음에 오게 되면 고추장을 챙겨 와 디피카와 비빔밥을 나누고 싶다. 내가 만든 음식을 디피카가 좋아할지 그녀의 반응이 벌써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