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가진 삶을 사는 것.

by 타자 치는 컴돌이


사랑을 가진 삶을 살고 싶었다.

단순히 애로스적인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베풀기만 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소망하던 사랑은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존재했고, 어쩌면 사랑은 하나의 '몰입'이었다.

내가 그것 안에 속해, 좋아함 이상을 가지고 대우하는 것. 그 대상에게 온전히 나의 것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빠져드는 것. 그 대상에게 모든 걸 걸어볼 수 있게 하는 좋아함을 가지는 것.


도대체 그 사랑이 무엇인지를 경험해 보고자 했다.


사랑을 가진 삶을 살고자 했다. 사랑하고자 했다. 많은 것들을 사랑하려 노력했다.

관계에서도, 공부에서도, 진로에서도, 글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도.


그런데 잘 안 된다는 걸 너무 늦게 받아들였다.



'좋아하는 것'은 노력으로써 가능하다.

좋아하려 노력하는 것도, 신경 써보려 노력하는 것도,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도, 그리고 그 대상 자체가 내 일상이 되도록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것은 '결단'이었다. 좋아하겠다는 결단을 가지고 살면, 정말로 좋아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능했다. 나의 '글쓰기'도 그러하고, '운동'도 그렇다. 심지어 마음에 들지 않는 주변 친구들을 향해서도 '노력으로써 좋아하게 되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사랑'은 아니다. 사랑은 아니다. '좋아함'과 '사랑'은 속성이 달랐다.

'사랑'은 노력의 결실이 아님을 알았다. '사랑'은 좋아함의 발전 형태가 아님을 알았다. '사랑'은 키워서 얻는 것이 아니라 어느날 그냥 받게 되는 것임을 알았다. '사랑'하기는 정말 어려운 것임을 알았다.


나는 무언가 한 가지에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쏟아붓고 싶었다. 특히 '진로'에서 그랬다. 정말 사랑하는 일을 찾아 그 한 가지를 파고 파서 미친놈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아인슈타인이나, 니체나, 일론 머스크나, 임윤찬이나... 그런 사람들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온전히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글쓰기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난 이제 와서야, 나는 생각했다.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지만 죽기까지 붙잡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일은 아니구나'라고.



사랑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사랑을 찾기 위해서, 아니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 위해서 이것저것 해보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것은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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