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18)[내가 오늘을 살아갈 이유] : 오늘도 잘 모르겠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하루의 계획표를 세운다. 보통은 운동이나, 영어단어, 독서, 등등등이 빠짐없이 들어간다. 브런치 글쓰기도 주 세 번 이상은 그 속에 든다.
중요한 건, 그런 '계획표'를 세우기 전에 항상 [목표] 리스트를 작성한다는 것이고, 또 [내가 오늘을 살아갈 이유]를 작성한다는 것이다. [목표] 리스트는 거의 매일매일이 같다. 작가로 부자 되는 게 첫 번째 목표가 되고, 성적도 목표가 있다. 그리고 운동에서도 목표가 있다.
그런데 [내가 오늘을 살아갈 이유]를 적는 칸은 거의 항상 비워져 있다. 아니, 비워져 있다기보다는...
(2025.3.18)
[내가 오늘을 살아갈 이유] : 오늘도 잘 모르겠다.
... 이런 식이다.
어제는 [모르겠다]였다.
"왜 사는 걸까?"라는 질문을 참 많이 한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친구들도 '왜 사는 걸까' 하는 질문을 많이들 한다. 하지만 대답은 다들 비슷비슷하다. "태어난 김에"도 그렇고, "죽지 못해서"도 그렇다. "꿈이 있어서" 산다는 친구들도 있다.
왜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왜 아직도 살아있나, 그리고 나는 왜 오늘을 살아야만 할까. 그런 질문들의 끝에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답이 있다. 목표를 확실하게 하고 힘차게 하루를 보내는 것과, 그냥 한숨 내뱉고 아무튼 오늘도 그냥 살아가는 것.
나는 분명 명확한(?) 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 목표가 있다는 것과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것은 조금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내가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솔직히, 언제 죽어도 억울할 게 없고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게 지금 내 상황인 것 같다.
살 이유가 딱히 없다는 것은 한 번씩 허무함더러 찾아오라고 문을 열어두는 것과 같다. 어쩔 때는 한 번씩, 어떤 때는 자주 찾아와서 모든 것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그러면 남는 건 한숨밖에 없다. "아, 왜 살지"
그 허무함이 꼭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솔직히 이제는 별로 만나고 싶지 않다. 나한테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사람과 계속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래서 그러는 것인데, [살 이유]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지 않을 이유]에 가깝다. 죽고 싶지는 않아서 만드는 목표니까. 아니, 사실은 목표도 아니다. 목표 같은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쓰는 글이다. 내가 쓰는 글 자체를 나는 [죽지 않을 이유]로 두기로 했다.
"왜 살아?" 하면 "글을 쓰니까" 하는 답이 나오고, "살아갈 이유가 있나?" 하면 "글은 쓰고 있으니까" 하는 답이 나오도록 살기로 한다. 작가가 꿈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글이 있으니까 그렇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죽지 않을 최소한의 이유가 생기는 셈이다.
이 글은 죽고 싶지는 않아서 쓰는 글이 맞다. 동시에, 나를 죽지 않도록 하는 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글을 쓰고, 또 글쓰기라는 목표를 두고, 더해 글이라는 행복을 정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