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결

겹겹이 스며든 지난날

by 두디

투둑, 투둑.

우산 위로 비가 떨어진다.


흐린 하늘 아래의 포근함.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서일까,

우산 아래 나만의 세계가 생겨서일까.

비 오는 날은 어쩐지 마음 깊은 곳이 아늑해진다.


흐린 날의 기억은 왠지 선명하게 남는다.


중학생 시절,

반 친구들과 불을 끄고

공포 영화를 보며 서로를 놀래키던 교실.

대학생 시절,

갑작스레 쏟아진 폭우를 맞으며

동기와 함께 깔깔대며 걸었던 캠퍼스.

인턴 시절,

창가에 앉아 흐르는 빗물을 바라보며

와인 잔을 기울이던 자취방.


비의 기억은 빗방울처럼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시간 속 어딘가에 작은 자국을 남긴다.


이어폰에서 잔잔한 재즈가 흘러나온다.

축축하게 젖은 풀냄새가

골목 사이로 은근하게 퍼져나간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풀려간다.


지나온 나의 시간들이

이 빗속에 겹겹이 스며 있다.


어릴 적엔 비가 와도 뛰어다녔고,

젖은 신발이 불편하기보다 신이 났다.

조금 더 자라선 빗소리에 잠겨

괜히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어느새 퇴근길에 선 어른이 되었다.

우산 아래, 말없이 하루를 정리하며

비에 깃든 지난날들을 천천히 꺼내 본다.


작은 물방울들이 하루의 끝을 두들긴다.

나는 비의 결을 따라

집으로 느리게 향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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