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뒤, 그 말을 곱씹는다. 왜 그 흐름에 그런 단어가 등장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런 표현을 골랐을까. 시간은 흘러가는데, 나는 아직도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 그 말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 어딘가가 까슬해진다.
며칠 전, 엄마와 연락이 닿지 않아 가족들 모두가 다급해지던 날이었다. 그때 새언니가 말했다.
“혼자 쓰러져서 돌아가신 줄 알고… 그렇게 되셨으면 너무 미안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엔 물음표가 가득했다.
‘이게 뭐지? 미안? 그 단어가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걸까? 이렇게 가볍게 들리는 건 내 기분 탓일까? 내가 새언니를 미워해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나는 사실, 새언니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은 너무 가볍고 무심하게 느껴져 자꾸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새언니의 말투를 곱씹으며 태도를 의심하고, 어느새 그 사람에게 반감이 생긴 나 자신을 발견했다.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말 한마디가 나를 그 마음으로 몰고 간다. 이런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다. 친구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찾아간 장례식장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조모와 평소 애틋한 관계였던 친구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는데 다른 친구 하나가 조문하며 말했다.
“잘 지냈지?”
순간,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스쳐갔다.
‘잘 지냈지? 이게 지금 어울리는 인사인가? 할머니를 잃은 사람에게, 이 말이 맞는 걸까?’
그냥 말버릇이었겠지. 하지만 그 한마디가 그 자리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예민한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게 예민함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영역이라고 확신했다. 언어는 곧 마음인데, 그 말에 아무런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 아닐까. 나는 상황에 어울리는 말을 고르기 위해 늘 애쓴다. 중학교 국어 시간,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가만히 사전을 들여다보면, 단어는 제각기 자기만의 쓰임새를 가지고 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국어사전을 펼쳐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시간 이후, 나는 정말로 단어를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에는 종이 사전을 펼쳤고, 요즘엔 익숙한 표현도 다시 찾아보며 그 뜻을 되새긴다. 말 하나에도 감정의 결이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런데 세상은 대체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는 문장을 신중히 다듬으며 의미를 전달하려 애쓰지만, 많은 이들은 그저 습관처럼 말을 건넨다. 내가 더 섬세해질수록, 감정을 더 정확히 표현하려 할수록 타인의 말이 더 날카롭게 다가왔다. 어떤 말은 마음을 찌르고, 어떤 말은 편견이 생겼다. 나는 표현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고, 그래서 무심한 말에 더 쉽게 다친다. 그럴 때면, 그들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자기감정을 아직 잘 모르는 건 아닐까. 조금은 어색한 표현으로, 그 순간을 겨우 이어나갔던 건 아닐까. 단지 그 순간, 가장 알맞은 단어를 찾지 못했을 뿐 속마음만큼은 나와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나 스스로 그 말의 쓰임을 잘 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내심 그것을 인정받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마음이 상대의 서툰 말까지 날카롭게 받아들이게 만들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며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나 스스로를 설득해 간다.
그래, 나는 대화의 흐름 속에서 낱말 하나의 의미를 짚어내는 예민한 사람이 맞다. 하지만 그 안에도 분명히 존중은 있어야 하기에, 누군가의 서툰 표현을 쉽게 단정 짓지 않으려 한다. 이제는, 말하는 이의 음절 하나하나에 담긴 사전적 정의보다는 그 안에 실린 진심을 더 천천히 들여다보고, 마음의 방향을 먼저 읽으려 한다.
혹여 물음표 가득한 말에 또다시 오래 머물게 되더라도 사람에 대한 긍정만큼은 잃지 않기로 다짐한다.